#5. 그때 나는 웃는 법을 잊고 있었다 ▶ “그건 명령이었다”
날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다름 아닌 내 소대장이었다.
---
입대 초반,
“배드민턴 좋아한다고?
그럼 개인정비 시간에 한 판 치자.”
라고 말하던 그 간부.
처음엔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줄 알았다.
소대장과 잘 지내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웃으며
배드민턴을 쳤다.
---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
개인정비 시간.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지만,
그 사람의 전화 한 통이면
모든 게 바뀌었다.
“음료수 캔 3개 들고
테니스장으로 와.”
그게 명령이었다.
---
빨래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세탁기 돌려놓고,
건조 끝나면 개어놔.”
아무 말 없이
빨래 바구니를 들었다.
그 이후로
그 사람의 빨래는
항상 내 손에 있었다.
---
상점카드도,
사무실 청소도,
분리수거도 다 내 몫이었다.
“이거 정리 좀 해줘.”
“책상 닦아.”
“휴지통 비워.”
그 사람은
한 번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
그리고 매일 점심.
우리 점심시간은 11시 30분.
하지만 나는
항상 11시 10분에
그 사람 사무실로 갔다.
“오늘은 뭘로 드시겠습니까?”
컵라면이나 냉동 음식이
내 손에 쥐어졌다.
“세팅해 놔.”
숟가락, 젓가락,
식판 정리, 전자레인지,
음료수까지.
내가 없으면
후임들 물건을 대신 꺼내서
음료를 챙겨야 했다.
---
그렇게 다 세팅했는데,
그날 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이후가 더 끔찍해졌다.
“야, 개인정비 시간에
사무실 청소 좀 하고 가.”
혹은
“여기 사무실에 앉아서
쉬어~ 가지말고
휴대폰이라도 봐~”
라고 놀리듯 말했다.
장난처럼 보였지만
그건 괴롭힘이었다.
---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
혹시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냥 거절하면 되지 않았어?’
나도 거절해 본 적이 있었다.
정말 너무 힘든 날,
장난처럼 말끝을 흐리며
거절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안 하면 벌점 줄 거야.
개인임무 수행 미흡으로~”
---
그땐 장난처럼 들렸다.
진심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
며칠 뒤,
내 상벌점 기록에서
이 문장을 봤다.
‘개인임무 수행 미흡 – 0.3점’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당장 소대장에게 따졌다.
다행히 벌점은 지워졌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그는 전혀 관심 없었다.
나를 고맙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사람.
그 사람은 벌점으로 나를 가지고 놀았다.
그게 정말 치가 떨렸다.
---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를
병사로 보지 않는다.
그저
시키면 다 하는
말 잘 듣는
편한 소모품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