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결추

by 케이

"저, 결혼해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런 소식을 전하다니?"

"누구야, 왜 여태 얘기 안한거야?"

"아, 이제 찾아봐야지요. 우선 날만 잡았어요. 12월 23일이요."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황당한듯, 어이없는 듯, 그럴줄 알았다는 듯.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럼 우리가 손놓고 있을 수 있나?"

"그렇지. 의리가 있지. 우리가 열심히 돕도록 하지."

"그래요. 이 자리를 빌어 케이 결혼을 위한 김선생결혼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죠."

"모두 잔 들어요. 김, 결, 추, 아자!"


케이는 이제 서른 하나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은 고교시절 잠깐 해 본 외에는 딱히 주장한적이 없었다. 오히려 매우 긍정적 성품 덕분에 서른이 되면 무언가 잘 풀려 있을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가졌었는데 이런, 그냥 나이만 먹었다. 결혼하면 매우 잘 살것 같은 자신감도 넘쳤다. 마음의 준비를 포함하여 대강 분위기도 무르익은 듯 한데 말하자면 결혼할 사람이 없었다.


3월의 급한 일들도 마무리 되어 간다.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와 동시에 실시한 수업공개, 학교 안전 점검, 민방위 훈련, 학습준비물도 속속 도착하고 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번에 학교에서 가장 큰 이슈는 동네에서 그림자처럼 떠돌던 아이들을 S선생님이 구제한 일이다.


5시쯤 퇴근하는 길에 맨발로 서있던 아이. 아니 청소년. 새까만 피부에 헝클어진 머리, 지나가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야생의 눈빛. 엄마는 없다고 한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다른 곳에서 혼자 산다고 한다.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시집 온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듯 했다. 농촌 마을 여기 저기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사람 없는 집에 들어가 밥도 먹고 씻기도 한다고 소문이 났다. 문제는 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인데 S선생님이 알아본 바 호적이 없기에 입학을 할 수 없었다. 12살의 누나와 10살의 남동생.


작년부터 S선생님은 혼자서 분주했다. 원로선생님이라 케이처럼 까마득한 후배와 상의할 일도 없었지만 아이들의 의붓아버지를 만나 설득하느라 많이 애쓰신 모양이다. 그래서 올해 결국 입학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1학년 담임을 자처하셨다. 어쩌면 그 혼란스러운 조합을 순탄하게 이끌 최적의 할아버지 선생님일 듯도 하다.


식탁 가운데 뚫린 화로위에서 삽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케이는 고기는 먹지 않고 상추 여러 장에 썰어진 고추를 싸서 쌈장을 올려 먹는다. 케이는 10년 넘게 채식하는 중이다. 중년이 되어 콜레스테롤 관리를 위해 매일 저녁은 신선한 채소 위주를 쌈을 싸서 먹는다는 멋쟁이 아저씨 G선생님도 비계 없는 살점을 집어들다 말고 케이 결혼 일정 선언에 고기 대신 술잔을 든다.


"자자, 이제 우리는 케이가 결혼에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어야 합니다."

"모두 잔 들어요. 김, 결, 추, 아자!" 우리는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사람들처럼 넘실대는 소주잔을 높이 쳐들고 아자를 외쳤다. 케이는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모르는게 없는 인생 선배 L선생님. 본인의 고차원적 유머를 남들이 몰라주어 늘 서운한 B선생님과 내가 처음 이 학교에 부임했을 때 '그래 네가 어떻게 잘 적응하나 보자.'하고 냉랭하게 지켜보았지만 지금은 케이의 말에 가장 많이 호응해주는 C선생님. 그림자 인생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품어주고 계신 S선생님. 그리고 미녀이자 센스만점이 우리 행정 실장님.

우리는 00초 7인방이다. 6인의 담임교사와 1인의 행정실장으로 이루어진. 물론 여기에 1년전 결혼한 내 동기도 있어야하지만 새댁은 요즘 바쁘다. 아이를 가지기도 했고 신혼의 달콤함을 우리는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기에 그녀는 요즘 모임에 뜸하다. 앞으로는 7인 체제로 가야한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