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달은 가장 오래된 TV

by 케이

"어떤 명필은 심부름하는 동자에게 먹 갈 물은 꼭 달이 웅덩이에 들어올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달을 떠오라고 했대요. 말하자면 달빛으로 먹을 간거죠."

"오, 운치있네. 백남준 작가도 아마 달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많지 않을까 싶어. 우리도 평상시에는 쳐다보지 않는 달을 유심히 바라볼 땐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잖아요. 길 떠난 연인을 기다린다든지,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든지. 뭐 그런."

"맞아요. 아이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도 달과 관련된 게 많고. 또 우리는 공통적으로 보름달에 대한 좋은 추억도 많지요. 비밀을 간직하는 사이에서는 밝은 햇님보다 초승이나 그믐달을 더 좋아할 것 같고."

"텔레비전이 없어도 우리는 달을 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위로받고 그랬네요. 나 어릴때 여름날 평상에 모기장 치고 누워서 식구들과 밤하늘 보던 생각이 나요. 물론 그 때 텔레비전이 있기는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막내딸한테 옛날 얘기 해주는 걸 좋아해서 그 때 방귀쟁이들이 쏘아올린 절구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거라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달이 완벽한 이야기 상자네요. 모든 사람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물론 밤에만 나타나지만"

"이거 원작은 모니터를 12개 썼다고 들었는데 이번 전시는 13개네."

"밀레니엄이라고 E-Moon을 하나 추가했대요. 디지털 달님인 거죠."

"그런데 케이, 너의 눈동자도 보름달 같아. 새로운 이야기를 같이 만들고 싶은 보름달."

오홋, 케이는 이런 식의 닭살 멘트를 좋아하진 않지만 꾹 참고 눈을 더 동그랗게 뜨려한다.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분위기면 12월 23일까지 가능할지도?


"수미야, 내가 얘기했던가 날 결혼날짜 잡았다고?"

"어, 그랬지."

"근데 너 가만 있는거야?"

"알았어. 승규씨한테 물어볼게"

케이는 수미에게 승규씨를 소개해줬다. 물론 알고 소개한 것은 아니고 병설유치원 선생님이 남동생을 빨리 해치우고 싶은데 여자친구가 없다하니 케이가 친구인 수미를 소개해준 것이다. 그게 작년의 일인데 둘은 잘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수미의 남자친구 승규씨의 죽마고우, 철민은 케이와 잘 맞았다. 좋아하는 가수도 김광석이었다. 서른즈음에를 좋아했고 둘 다 서른이 되길 고대했다고 한다.


"자자. 모두 주목!"

행정실장이다.

"오늘부터는 미쓰리가 커피를 책임질 거예요."

교무실 싱크대옆에 못보던 박스를 걷어내니 거기에 사무실용 커피 자판기가 나왔다.

"우와~, 너무 멋져요."

"맞어, 우리 케이가 고생했지. 솔직히. 하지 말라고 해도 나서서 하고. 그간 고마웠어."


케이는 이 학교에서 막내다. 물론 동기가 있지만 그녀는 이미 유부녀라 케이와는 대우가 약간 다르다. 좀더 어른 대접을 한다고나 할까?

출근 후엔 모두 교무실에 모여 커피 타임을 가졌다. 케이가 오기전엔 각자 커피를 타마시고 각자 씻고 헤어졌던 모양인데 케이가 온 후 풍경이 달라진거다. 케이는 즐겁게 커피를 타고 커피잔도 모두 모아 씻었다. 다른 괜찮다고 하는데도 그걸 즐거워하는 케이 덕분에 교무실에 모두 함께 머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3월 중순까지는 교무실에 난로가 있는데 커피잔을 씻고 나면 어서 손을 녹이라고 성화였다. 케이는 8남매다. 그리고 8번째다. 이 학교가 좋았다. 다들 나이가 많다. 익숙한 분위기다. 편안함을 느꼈다. 한 사람만 빼고. 그 와중에 오로지 C선생님만 '어디 네가 언제까지 그러나 보자'하는 눈초리였다. 케이는 엄청난 눈치없음으로 C선생님의 눈치를 극복해냈다. 미쓰리는 그 첫번째 성과다. 다들 더이상 막내를 고생시켜서는 안된다는 의견일치를 본거다.


우리는 모닝 커피 한 잔으로 집 나간 정신을 붙들며 '오늘도 화이팅'을 외친다. 이 노란 물이 들어가야 진정한 하루의 시작이다. 지지고 볶는 우리의 이야기말이다. 교실 문을 열기전 광대와 입꼬리를 올린다. 문을 연다. 그리고 외친다.


"얘들아, 안녕!"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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