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나는 배려했고 상대는 상처받았다

by 원쌤

최진석 교수의 책 <경계에 흐르다>에는 매일 아침 교문에서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던 신부님(가톨릭계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신부님으로부터 한 번도 내가 별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또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도 듣지 않았으나,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 주실 때마다, 호명되는 학생은 그 순간에 고유한 자신의 이름 앞에서 이 세계에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는 경험을 한다.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일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 가야 할 길일 것인데, 그 일은 커다란 목소리나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이름 불러주기’로 완수되었던 것이다.


책을 통해 얻은 지혜와 지식을 내 상황에 쉽게 적용하는 잘못된 습관 때문에 오히려 사람 잡는 선무당이 된 적이 참 많다.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들에게 개별 학습상담을 할 때 일이다.

준혁이(가명)는 약간의 틱 장애와 심각한 불안증세가 있는 5학년 남자 아이다. 상담시간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몸을 계속 흔들고, 혼잣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기에 “뭐라고요?”를 끝없이 했고, 나는 똑같은 말을 몇 번씩 해야 했다. 상담 초기에는 늘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학습상담이 언제나 그랬듯이 준혁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을 들고 나와 눈을 맞추며 가끔씩 질문도 하고 얼굴 표정도 점차 부드러워졌다.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도 점점 사라졌고, 내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한 번에 대답을 하는 일도 많아졌다.

3개월이 지나 상담이 종료되던 날, 그동안 상담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일을 매우 힘겨워하던 준혁이가, 그날은 망설이지 않고 첫날 만난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불러서 깜짝 놀랐어요.”

상담 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오지 않아서 교실에 찾아가니 담임선생님은 안 계시고 남자아이 한 명만 앉아있었다. 당연히 그 아이가 준혁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한 부드럽고 다정하게 물었다

“준혁아, 선생님 어디 가셨니?”

하지만 아이는 멍하니 나를 쳐다본 채 말이 없었다.

내 말이 준혁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 되었을지를 그때는 미처 몰랐다.

가뜩이나 의기소침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한테 처음 보는 사람이 잘 아는듯이 친근하게 이름을 불렀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낯선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면서 다가온다면 나 역시 두려움과 공포감에 휩싸였을 것 같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다정하게 불러주는 이름은 내가 이 세계에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는 경험,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다정할수록, 그리고 따뜻할수록 두려움이 더 커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는 행동이, 어쩌면 그 상대를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짧은 순간, 어린 영혼으로부터 배웠다.


사자와 소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 최선을 다 해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사자는 매일 아침 맛있는 고기를, 소는 늘 신선한 채소를 식탁에 가득 올린다. 참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헤어지면서 둘은 서로에게 말한다.

“난 최선을 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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