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배운 기다림과 배려

어린 시절의 작은 배움이 준 소중한 자산

by 원쌤

교대를 졸업하고 첫 발령받은 학교 근처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어느 날 1학년 선생님 한 분이 ‘성당유치원 졸업한 애들은 좀 다르다’는 말을 했다. 당시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이 별로 없던 신출내기 교사였지만 귀가 솔깃했다.

“뭐가 다른데요?”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일단 애들이 차분하고 집중력이 좋아. 예의도 있고, 하여간 다른 애들이랑 분위기가 좀 달라”


그때 나는 남자친구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꼭 성당유치원을 보내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 셋을 다 성당유치원에 보냈다.


큰 아이 때에는 선착순이어서 어렵지 않았다. 집도 유치원 근처였기에 토요일 오전부터 가족들이 교대로 줄을 서서 월요일 아침에 입학원서를 쓸 수 있었다. 이틀밤 동안 유치원 복도에 학부모들이 돗자리를 깔고 밤을 새우는 모습에 놀란 유치원에서 다음 해에는 추첨제로 바꾸었다. 둘째는 추첨에서 떨어졌으나, 막내를 업고 매일 유치원 사무실에 가서 사정한 끝에 간신히 결원이 생긴 빈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막내는 개인사정으로 2년 반 수료 후 다른 유치원에서 졸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공정하고 확고한 교육신념을 가진 좋은 선생님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혼란스러울 적이 꽤 많았다. 내 방법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면 안 된다고 아이들을 가르쳤으나, 다른 집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꾸로 올라가서 우리 아이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 아이들은 거꾸로 올라와서는 차례를 기다리는 내 아이를 무시하고 당당하게 미끄럼을 탔다.


기다리다 지친 아이는 “엄마, 쟤는 왜 거꾸로 올라와? 나도 거꾸로 탈래” 라며 불평을 했다. 벤치에 신발 신고 올라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나, 사내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흙 묻은 신발로 올라가곤 했다. 의자에 흙과 모래가 잔뜩 흐트러진 장면을 보며 머리를 갸우뚱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심란했다.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 다들 저렇게 하는 데 우리 아이들만 바보 되는 건 아닌지? 저러다 사회에 나가면 낙오되는 건 아닌지?


하지만 아니었다. 성당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지켜야 할 규칙과 예의범절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쳤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정해진 규칙을 어겼을 때는 따뜻하지만 확고한 태도로 바르게 고쳐주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연극에서의 주인공이나, 동시 낭송 대회의 사회자도 아이들이 투표로 직접 뽑았다.


그것은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없으면 쉽게 결정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아이들이 집에 와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편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집에서 배웠던 것과 비슷하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어렵거나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초등학교시기가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세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시기인 유치원이야말로 인간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예절과 약속 지키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그 어린 시절의 배움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아이들의 삶에서 든든한 정신적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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