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무섭습니다
시작은 0인가, 1인가. 숫자를 배울 때 우리는 1부터 배우지만, 사실 모든 것은 0에서 1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 처음, 첫 경험, 첫 선택, 첫 실패, 그리고 첫 도전. 이 단어들이 주는 무게는 나이가 들수록 설렘에서 무서움으로 변해간다.
내게 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지점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 바로 선(線)이다.
물론 처음부터 선이 무거웠던 건 아니다. 과거의 내게 선은 그저 치러내야 할 과제였고 생존이었다. 일주일에 40장, 못 그리면 80장을 그려야 했던 시절의 선에는 미학도 사색도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기계적으로 그어대던 흔적이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2012년, 나는 다시 드로잉을 시작했다. 계기는 2008년 일본에서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그저 셔터만 눌러대며 풍경을 기록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본 그 사진들에는 내가 그 장소에 머물며 충분히 사색했던 흔적이 없었다.
가만히 멈춰 서서 대상을 느끼지 못하고 셔터만 눌러댔던 그때의 아쉬움이 나를 다시 펜 앞으로 이끌었다. 과거에 기계적으로 수만 장을 그려본 경험이 있으니, 다시 시작하는 게 쉬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펜 끝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회의 맛을 알아버린 탓일까. 처음에 잘못 끼워진 단추를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버린 어른이 되고 나니, 선 하나를 시작하는 행위가 마치 거대한 중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버겁고 느려졌다.
지우개가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시작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고, 지우개질을 한다고 해서 시작이라는 행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단순한 모임인 줄 알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참여자가 전공자들이었다. 그들 틈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중간점검일 즈음이었다. 그 자리에 초대된 노교수님 앞에 서게 된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했다.
"교수님, 저는 처음 선을 긋는 게 너무 두렵습니다. 그 첫 선이 너무 무섭고 무거워서 괴로울 정도입니다."
평생 선을 그어온 거장의 입에서 나올 대답은 '자신감을 가져라' 같은 틀에 박힌 이야기 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나도, 나도.. 아직 무섭습니다."
그 한마디가 나를 이끌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평생을 선과 함께 산 대가조차 여전히 첫 선의 무게를 견디며 긋고 있구나. 그 두려움은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결함이 아니라, 대상을 진지하게 대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경외심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림을 손에서 놓은 지 어느덧 6개월이 넘었다. 그림이라고 해봐야 드로잉이고 가서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진만 찍어와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기 여행이 내게 줄 수 있는 시간과 나의 실력은 비례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방식의 드로잉을 하고 이제 기록을 시작 중이다)
그런 내가 겁도 없이 작가들의 모임에 들어갔고, 운영진이 되어 전시라는 떨림의 첫 시간을 앞두고 있다. 저번은 멍하게 있다가 데뷔했다면, 이번에는 그 무게를 알고서 맞이하는 진짜 처음이다.
처음이라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앞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번에도
그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나 잘할 수 있을까?
여전히 선은 무겁고 시작은 차갑지만, 다시 한번 펜을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