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태호, 어떤책
주변 사람들한테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왠지 이 글에서는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30년 넘게 교회를 다니고, 목사랑 결혼도 한 내가 가끔 신의 존재를 의심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유인즉슨, 신이 살아있는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인가 싶은 것이다. 나도 이제 그 분을 따라 좀 변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은 존재한다. 신이 없다고 가정하면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나면, 그 다음으로는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정말 신을 믿는 걸까? 긍휼이 많은 신을 믿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용서하기가 어렵다. 전지전능한 신을 믿으면서도,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산다. 이런 내가 정말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종종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나의 삶 속에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기억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것을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을 되새긴다. 여전히 나는 연약하지만, 그것마저도 이미 용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 기억들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내가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아빠, 엄마가 모두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떠한 전조증상도 없이 갑작스럽게 아프셨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죽는 것도 슬프지만, 혼자 살아가야 할 내 삶이 더 두려워서 울었다. 부모님이 너무 미웠지만, 부모님을 너무 사랑했다. 보호자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버려질 것 같은 느낌. 그 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고아가 아니야. 내가 너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을거야.
어떤 기억들은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 기억은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숨어있다가, 인생 속의 결정적인 선택에 대한 이유가 되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도에서 만났던 선교사들이 떠올랐다. 그때 본 사람들의 이름도, 그 후에 그들이 어찌되었는지도 전혀 모르지만, 그들을 만난 지 20여 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는 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농담을 던질 여유가 있었고, 이기적인 청년 하나를 받아줄 넉넉함이 있었으며, 결국 20대의 나에게 가장 위험한 곳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게 했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호의적임을 믿고 힘차게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태호, 어떤책
브런치 작가이기도 한 조태호 작가는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고생길을 걷게 된다. 일본 대학 연구실의 숨막히는 군대 문화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은근히, 아니 어쩌면 대놓고 사상을 강요하는 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다가 어려움을 겪고, 그 뒤로 계속 고난, 고난...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를 좇아가는 대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는 것을 택했다.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자신의 계획보다 더 큰 이의 이끄심을 믿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다 싶은 시절이 왔을 때, 그 이끄심대로 다시 불확실한 길을 선택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선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보며 나는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돈, 명예, 성과를 독촉하는 세상 속에서 나홀로 그게 아니라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았는데, 나말고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가난하면 미래를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해야지 왜 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는 핀잔에 눈물을 삼키고 웃을 수밖에 없던 내가 바보 같아 보였는데, 나만 바보가 아니었구나.
종교가 다른 분들에게는 오늘의 책 이야기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종교는 한 사람의 세계관을 이루는 중심 축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이니 편안하게 느껴지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고난 속에서 감사의 이유를 발견하고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