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풀라이프>, 평양냉면같이 슴슴한 연출이 좋다
by
김이안
Jan 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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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진이 누군가. 영화 평론가 하면 거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아닌가. 빨간테 안경에 한 줄평으로 유명한.
이 사람이
어느 날 유퀴즈에 출연해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만약에 죽기 전에 영화 하나를 볼 수 있다면 뭘 고르겠습니까?"
2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영화로 답한 게 바로 <원더풀라이프>다. 그의 한줄평은 이러하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
'
/
별 5개
3
연말이나 연초에 보기 좋은 영화.
지난 삶의 나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설정과 메시지가 그러하니까. "만약 딱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간다면, 당신은 어떤 기억을 택할 건가?"
잠깐, 그러고 보니 이동진이 유퀴즈에서 받은 질문과 맥락이 비슷하구나.
4
좀 허무맹랑한 설정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영화는 진지하다. 사람들이 죽어서 '림보'라고 하는, 대기장소에서 일주일을 머문다. 수요일까지 자신의 단 하나의 추억을 고르면, 대기장소 직원들은 그 추억의 장면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각고의 정성을 기울인다.
토요일, 림보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고심하며 고른 단 하나의 추억이 재현된 영상을 본다. 그리곤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 이 과정들이 진지하고(그래서 조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신비하고, 인상적. 직원들이 묻는 이 물음의 여운이 진하다.
"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5
집에서 고요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될 때 보는 걸 추천한다.
비오는 날이면 더 좋을 듯 하다. 이동진이 자신의 인생영화라고, 웬만하면 본 영화를 또 보지 않는데 지금까지 5번 정도 봤다고 얘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잘 봤다.
6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추억을 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고로, 부지런히 추억을 남기고, 기록, 보관하자.
7
나는 3일 정도 고민한 끝에(원래 영화를 보고 이렇게까지 고민 안 하는데) 작년 추석, 부모님과 동생 가족과 우리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서 머물며 보냈던 추억을 택했다. 처음엔 나와 아내와 딸아이와 둘째와 뭔가 웃음포인트가 터지며 웃었던 기억을 골랐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이왕이면 부모님과 동생 가족들까지 다 있었던 추억을 골라야 부모님과 동생 가족들에 대한 기억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 그러면 아예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기억을 고르는 게 나으려나?
8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더 찾아서 봐야겠다. 담담하게 메시지를 향해 나아가는 연출.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밝으면서도 쓸쓸하고, 서늘하면서도 따듯한 연출.
평양냉면같이 슴슴하면서도 다시 입맛이 당기는 묘한 연출.
그래,
오늘 저녁은 평양냉면을
시켜 먹자. 슴슴하고 시원한 국물을 마시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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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라이프
이동진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연재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01
영화 <오두막>, 나는 언제나 이 영화를 권한다
02
영화 <원더풀라이프>, 평양냉면같이 슴슴한 연출이 좋다
03
책 <고전이 답했다>, 아침 사과 같았던 책
04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그의 삶을 좀더 가깝게
05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소소하고 성실하고 충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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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두막>, 나는 언제나 이 영화를 권한다
책 <고전이 답했다>, 아침 사과 같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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