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읽고, 점심시간에 읽고, 자기 전에 읽는 등 틈틈이 읽었다. 신선한 아침 사과와 같았던 책. 나는 종종 아침에 사과를 먹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삶의 생기 같은 것을 느끼곤 하는데, 이 책이 내게 그러했다.
사각사각하고 씹으면 나오는 사과 특유의 달큰상콤 싱그러운 과즙. 이 과즙엔 신비한 힘이 있어서 침샘을 자극하고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의 세포들을 깨운다.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가 딱 그와 같았달까.
낮에는 MBC 개그맨으로, 옥션 마케팅팀에서 대리로 일하고, 밤에는 네다섯 군데씩 밤무대에 오르며 살았다. 밤무대까지 끝나고 집에 오면 새벽 3시 30분. 씻고 누우면 밤무대 여파로 심장이 둥둥거려 잠을 잘 수 없었다. 5시쯤 겨우 잠들고 7시에 일어났다. 26p
그러다 2005년에 교통사고가 났다. 매니저가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리다 앞서 가던 트럭과 크게 충돌하고 말았다. 눈을 뜨니 의사 선생님은 내게 사흘 안에 죽을 수 있으니 유언하고 신변을 정리하라 권했다. 언젠가 있을 행복한 날을 누리기도 전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그때 깨달았다. 26p
교통사고로 죽음 앞까지 갔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34년간 끌려다니며 살아왔음을. 남들이 옳다고 말해주는 방향으로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그냥 휩쓸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다. 기적이 일어나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을 가리라 다짐했다.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직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깨달았다. 33p
내가 겪은 교통사고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인생 최고의 축복으로 작용했다. 교통사고를 계기로 책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187p
저자인 고명환은 심각한 교통사고로 인해 의사에게 '사흘 안에 죽을 수 있으니 삶을 정리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하루에 3-4시간 정도밖에 못 자며 밤낮없이 일했는데 어느 날 문득 죽음을 목전에 둔 것. 이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고,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가' 강한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하면서 고명환은 독서를 시작했고 고전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고 쓴 저자 나름의 독서노트라 할 수 있다.
위대한 고전을 남긴 작가들은 모든 것을 상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은유와 상징, 비유와 압축을 통해 읽는 사람이 스스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석하게 만든다. 6p
고전은 모양이 없다. 나는 모양이 있다. 내가 고전을 읽으면 고전이 내 모양으로 바뀐다. 그 고전은 세상과 싸울 어떤 무기보다 단단한 갑옷이 된다. 6p
수천 년의 지혜가 녹아 있는 고전이 아니고서야 내 약점을 막아줄 존재는 없다. 그러니 사람에게 묻지 말고 고전에게 물어라. 이미 고난과 역경을 겪어온 경험이 농축된 고전에서 답을 구하라. 이 책은 고전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고전이 너무 읽고 싶어진다. 바로 그때,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 된다. 7p
한 마디로 이 책은 고명환이 다양한 고전 책들을 읽으며 자기 삶에 적용한 얘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고전을 읽으면 새롭게 살아난다고 선포한다. 고전을 읽으며 매년 찾아오던 우울증이 사라졌고,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으며, 생의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단문을 써서 술술 잘 읽히고 무엇보다 저자 본인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전에 70페이지쯤 읽다가 만 벽돌책 '모비딕'을 다시 펼쳤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이 치열하게 고전을 읽고 자기 삶에 녹여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니 나도 다시 한 번 고전을 꾸역꾸역 읽어보련다.
+ 책속밑줄 +
오늘 하루 미치도록 몰입해서 일했다면 나는 죽음이 당장 닥쳐와도 평화롭게 맞이할 자신이 있다. 지금은 2023년 12월 30일 새벽 4시 10분이고 욕지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다시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게 이보다 행복한 두 시간이 있을까? 억만금을 쓰며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85p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했다.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 외 다른 존재에게 이롭기 위해 창조됐다. 누구에게나 남을 돕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이런 마음을 잘 이용하면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낼 수 있다. 113p
나는 어릴 때 자연에서 놀았고, 자연의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녹아들었다. 내겐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마다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장면이 있다. 2월의 눈 덮인 둑길에서 눈을 파헤치면 그 속에서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싹, 그 경이로움. 그 힘찬 새싹의 모습이 '힘든 시간을 견디면 봄은 반드시 온다'는 진리가 되어 나를 견디게 해주었다. 119p
부모의 의지가 중요하다. 학원에 보내려는 의지의 절반만큼만 투자하면 아이를 얼마든지 자연으로 보낼 수 있다. 그 시간의 가성비는 100배, 1000배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깨쳤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욕지도에서 물고기를 잡고, 나물을 뜯어서 밥을 해 먹고 있다. 자연스러운 음식을 먹으니 글도 잘 써진다.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다. 122p
나는 크리스천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안다. 새 신자들이 은혜를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새 신자들은 하나님을 소유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 신자는 그냥 하나님 품 안에 존재할 뿐이다 순수하게 품 안에 존재하니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하나님을 소유하려 든다. 소유된 하나님은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가짜 하나님이다. 나의 생각과 개념으로 정지시켜 버린 하나님에게 소유하고 싶은 이것저것을 희구한다. 124p
이해되지 않는 고전을 붙잡고 악으로 깡으로 밤을 새워 읽고 또 읽다 보면 갑자기 번쩍 하고 머리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든다. 한없이 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 꼭대기에 서서 저 땅을 내가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그 느낌을 가져보라. 고전은 그 무엇보다 신선하고 상쾌하다. 읽는 순간, 내 가슴속에서 늘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136p
아는 것과 운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방법을 아는데 30분, 그러나 그것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데는 10년이 걸린다. 149p
요즘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래, 이게 삶이야"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작년 봄에 식당 주방에서 메밀국수를 삶다가 열린 창문 틈으로 벚꽃 향기가 실려와 내 몸을 감싼 순간이 있었다. 물론 돈을 벌려고 메밀국수를 삶는 중이었지만 돈이 1순위는 아니었다. 돈이 벌리는 것은 그다음 순간의 결과이고 벚꽃 향기는 지금이다. 155p
지금 행복해야 한다. 지금 먹는 밥이 삶의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찾고, 있어야 할 이유를 알아낸 후에 '지금'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나 역시 지금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155p
난 과거 10년 동안 매년 새해가 되면 1년 365권 읽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한 결심은 두 달 이상 간 적이 없다. 하지만 2017년 10월 17일의 어느 날 문득, <노인과 바다>를 하루 만에 읽고 뿌듯함을 느꼈다. 다음 날에는 <데미안>을 하루 만에 읽었고 재미를 느꼈다. 너무 신났다 그 뒤로도 결심 없이 그냥 읽기 시작했다 171p
아무리 피곤하고, 술을 많이 마셨어도 읽었다. 결심을 지킨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늘 자연스럽게 하던 행동이니까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결심하기보다는 '문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심하기를 경계해야 하는 이뉴는 너무 '무리하게 계획을 세운다는 것'에 있다. 특히 격정에 사로잡혀 결심할 때 인간은 보인의 역량보다 훨씬 더 큰 결심을 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야만 격정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172p
그렇다면 '문득'은 어떻게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가? 역시 평소에 내공을 쌓는 방법밖에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번역일을 하며 책을 엄청 읽었다. 나 역시 끌려다니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싶어 책을 많이 읽었다.
인간은 지금 하고 싶지 않아서 결심을 한다. 결국 미루고 싶을 때 결심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지금부터 절대 결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아니다. 그냥 하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결심하지 않을 수 있다. 결심 금지. 172p
고전에는 압축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는 것이다"(칼융) 이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많은 해석이 존재하는가. 195p
감히 얘기하는 데 독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쾌락이다. 욕심이 사라지고 사랑이 충만해진다. 읽던 책의 한 문장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는다. 비유와 상직, 은유로 압축된 문장이 '나'라는 압축 해제 파일을 통해 가슴속에 알알이 다운로드 된다. 그 문장들은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뒤집히게 하고,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201p
고전을 읽고 그 철학에 푹 빠져 있다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몸살이 났을 때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으며 기분 좋게 푹 자고 나온 느낌이다. 우리 몸에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운동을 시켜줘야 하는 게 아니다. 정신에도 똑같이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건강한 운동을 시켜줘야 한다. 242p
고전은 우리가 먹는 모든 영양제를 합쳐놓은 것과 같다. 비타민C가 부족하면 감기에 잘 걸리는 것처럼 고전의 지혜가 없으면 정신이 자주 아프다 242p
한 시간의 독서로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은 없다. 고전을 한 시간만 섭취하면 모든 불안은 사라진다. 불안감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의욕이 충만해진다. 한 페이지만 읽어도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듯 고전을 읽으면 정신이 건강해지는 게 와닿는다. 243p
내 안에 있는 거인을 깨우는 유일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은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여주고 그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고전은 예민한 감각을 키워준다. 고전이 수천 년 동안 인간과 함께 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취해야 한다. 248p
당신이 지금 머무는 곳에서 숨이 막힌다면 고전을 펼쳐라. 당신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고전이 안내해 줄 것이다. 2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