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고전이라 불려지는 책들, 거기에 두께는 가히 벽돌인 책들은 답이 없다. 맨 정신으로는 거의 읽기가 힘들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취중진담 식으로 알코올이 살짝 들어간 상태로 읽으면 좀 나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음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작품들이 그래도 좀 읽히는 때가 있었으니. 독서 진도가 배속으로 나갈 때가 분명 있으니. 아내와 싸운 후다. 남편에게 부부싸움이란 무엇인가. 패전이 예고된 싸움이다. 결국은 질 싸움이다. 병법서 왈, 패할 싸움은 시작하지도 말라 일렀거늘, 어리석은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로 불나방처럼 아내에게 덤비고 만다. 죽을 줄 알면서.
한바탕 격전 후 이 불편하고 싸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몰라 밖으로 나간다. 이때 챙겨할 것. 읽는 진도가 퍽이나 더디게 나갔던 고전 벽돌책 한 권. 나의 경우, 그것은 모비딕 이었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었다. 인생이 불현듯 끝나기 전, 그래도 한 번은 읽어야지 하고 나머지 숙제마냥 붙들고 있는 이런 부류의 책들. 평소에는 어거지로 어거지로 자기 전에 조금씩 읽던 책들이 바로 이런 때, 마음이 쎄할 때, 마음 가눌 길 없어 방황할 때, 유독 잘 읽힌다는 진실 아닌 진실.
그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특히 고전작품이 있다면, 일단은 눈에 보이는 곳에 꺼내 놓으라. 그리고 부부싸움 후 어딘가로 잠시 피신해야 한다면 이런 때 고전 벽돌 책을 가방에 넣고 도망가라. 이때만큼 이런 부류의 책이 잘 읽어지는 때가 없다.
역시 삶이 좀 힘들 때, 알싸한 양념이 좀 뿌려지는 것인가. 평안하고 걱정이 없을 땐 그리 안 읽히던, 심히 퍽퍽한 닭가슴살 같던 고전. 허나 슬픔과 비참에 잘 버무려진 고전은 윤기가 촤르륵 흐르는 간짜장 버무린 면발과 같달까. 어느새 내 영혼의 목덜미로 흐르는 짜장 짜장 간짜장의 면발들.
그대, 부부싸움과 같은 재앙을 만나 패잔병처럼 거리를 방황할 때 가방에 고전 책 한 권을 지참하라. 그 책이 잠시 그대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리니. 잠시 현실을 잊고 책 속 내용에 얼굴을 담궜다 나오면,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그렇다. 먼저 다가가는 것, 먼저 사과하는 것이 최후의 승자가 아닌가. 물론 대번에 이 사과가 받아들여질 확률은 극히 낮으나, 그래도 일단 한 번 굽히고 들어가면 마음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그대, 삶이 지금 씁쓸한가. 건조한가. 우울한가. 그렇다면 재미없다고 정평난, 한편으론 명작이라고 이름난 고전 비스무레한 책을 펼쳐보자. 지루하면 지루한 대로 책을 덮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생각보다 재미있다면 조금 더 작품 속 세계에 몸을 담궜다가 나오자. 그리고 다시 현실과 맞짱 뜰 준비를 하면 된다.
단 부부싸움의 경우는 제외. 아내에게는 철저히 고개를 숙이자. 어차피 진 싸움, 패배를 인정하라. 패전 후 순순히 아내의 추가 조치 사항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