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지만 왜 손꼽는 고전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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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주지 않았지만, 혼자 인생숙제 라 여겼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대학교 기숙사 선배가 읽길래, '오, 이 형 이런 책을 읽네' 했고, 이어령 선생님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리뷰한 글을 읽었을 땐 언젠가 직접 책으로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다 마지막 결정타는 차인표 씨. 세바시에서 매일 밤 자기 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조금씩 조금씩 읽고 마침내 그 벽돌책을 다 읽었을 때 그 희열과 뿌듯함이 자기 삶의 변곡점이었다고. 이게 결정타였다. 그래, 이제 읽어야지.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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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뭐 이런 게 다 있나. 이거 뭐 그냥 개차반 집안이구만. 그런데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섬뜩할 정도로 세밀하고 적나라하다. 네 안에도 이런 생각들이 있잖아. 이런 치사함과 이기적인 본성이 있잖아 - 라고 방맹이를 후려친다. 거북하고 쓰디쓰다. 근데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어. 씁쓸하지만 꾸역꾸역 읽어간다. 이래서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하는구나. 심리묘사가 섬뜩하게 솔직해서. 니 안에도 이런 면이 있잖아. 나도 모르게 인정하게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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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분석 <이반> _ 표도르의 둘째 아들
'그래, 나는 그때 뭔가를 기다렸어, 이건 사실이다! 나는 바로 살인이 일어나길 바랐던 거다. 그걸 바랐던 거다! 아니, 내가 정말로 살인이 일어나길 바랐던 걸까, 그랬던 걸까? 240p
"만약 살인을 저지른 것이 드미크리가 아니라 스메르쟈코프라면, 물론 나도 그때 그놈과 공범이야, 내가 그놈을 교사했으니까. 사실, 내가 그놈을 교사했는지 어떤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하지만 드미크리가 아니라 그놈이 죽인 것이 맞으면, 물론 나도 살인자야" 241p
"들어 봐, 이 불행한 놈, 이 썩을 놈아! 네놈이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지금까지 네놈을 죽이지 않은 건 오로지 내일 법정에서 증언을 시키기 위해 아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보고 계신단 말이다. 나는 바로 내일 법정에서 나 자신을 고발하겠어, 결정했다! 나는 모든 것을 말하겠어, 모든 것을, 하지만 네놈도 나와 함께 출두할 거다! 271p
무신론자의 대표 캐릭터로 나오지만 나는 오히려 이반의 자기 객관화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솔직한 부분이 오히려 신앙적이라 생각했다. 신앙이란 자기 안의 죄성과 한계를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죄된 본성 때문에 오히려 신이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신앙의 역설은 솔직하면 솔직해질수록, 연약함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도리어 신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이런 과정이 없으면 사실 인간에게 신은 그리 필요치 않다.
이반은 오히려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고발하겠다 선언한다. 그래서 스메르쟈코프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자기 치부를 드러내어서라도 떳떳해지겠다는 의지다. '하느님이 보고 계신단 말이다!' 이런 이반의 고백이 어찌보면 찐 신앙, 참 신앙을 향한 길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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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분석 <스메르쟈코프> _ 하인 & ...
"다름 아니라 바로 이런 정황이죠. 즉, 도련님은 자기 부친이 어서 빨리 살해되었으면 하는가, 아닌가? 하는 거요."
이반의 속을 제일 심하게 뒤집어 놓은 것은 이 집요하고도 뻔뻔스러운 어조였는데, 스메르쟈코프는 계속 그 어조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이놈, 네 놈이 아버지를 죽였구나!"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스메르쟈코프는 경멸스럽다는 듯 히죽 웃었다."
"내가 안 죽였다는 건 도련님이 더 잘 알고 있으면서." 234p
도대체 정이 안 가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모든 인간 안에는 스메르쟈코프가 가진 비열함, 뻔뻔함, 교활함이 있다. 이게 인정이 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때 비로소 읽는 이에게 명작이 되는 게 아닐까.
"아니 왜요, 차라리 지금 죽이십죠. 죽여 보시라고요." 스메르쟈코프가 이반을 이상야릇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갑자기 이렇게 덧붙인 뒤 그는 씁쓸하게 피식 웃었다. "감히 아무 일도 못하실걸요, 전에는 그렇게 용감하시던 양반이!" 275p
아우, 얄미워. 말을 참 얄밉게 한다. 이러니 이반이 폭발할만하지. 참고로 스메르쟈코프는 간질 증상이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간질을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 <백치> 같은 다른 소설에서도 간질을 앓는 주인공 미슈킨 공작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다.
어쨌든 소설가는 자기의 모든 경험을 활용해 캐릭터를 만드는구나. 그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든, 떨쳐버리고 싶은 트라우마든. 모든 경험과 사건들을 총망라해서 한 인물을 만들어내고 서사를 부여한다.
스메르쟈코프. 그는 끝내 어떻게 되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권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스포는 김이 빠지니까.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