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극 여성 캐릭터들 - 드라마 편 (1)
제발! 사랑에 모든 걸 바치지 마. 아무리 장르가 로맨스여도 그렇지 사랑 하나만으로 해결이 되니.
사극 드라마에선 전쟁, 역모, 정치싸움 등 다양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목숨을 위협받는다. 대게 목숨을 위협받는 주인공들 옆에는 죽고 못사는 여성 혹은 남성 캐릭터가 있다. 아무리 2010년대 들어 로맨스를 중심으로 한 퓨전사극이 인기를 끈다지만, 너무나 많은 사극 속 여성 인물들이 사랑 때문에 죽고 사랑 때문에 산다. 어떻게 보면 여성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사랑이라는 멜랑꼴리한 감정을 통해 주인공을 각성하게 하고, 이야기 전개를 원할하게 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사랑’이라는 멜랑콜리한 감정을 통해 주인공을 각성시키고, 이야기 전개를 위한 촉매제로 기능하는 듯하다. 물론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로맨스 사극에서 주인공 간의 사랑은 중요한 서사 요소이지만, 여성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단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그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어려웠고, 삶의 경로가 결혼과 출산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던 전근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여성 인물이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일정 부분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고, 아이를 잘 낳는 정숙한 여성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소위 ‘싸가지 없다’, ‘도도하다’, ‘고집이 세다’,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지 않는다’는 식의 인물 설정은 사극에서는 오히려 고증 오류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 큰 활약을 하지 않았던 여성 인물을 억지로 영웅화하려다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고,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퓨전 사극이 주류가 되고, 대부분의 사극이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물은 여전히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주변 인물에 쉽게 휘둘리며, 답답할 정도로 주체성이 부족하거나, 혹은 소위 ‘빌런’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남성 캐릭터가 그런 여성 캐릭터를 구해주거나, 그녀가 망쳐 놓은 상황을 수습하는 서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며 현실적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움을 느꼈던 경험, 사극을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사극에서 이렇게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걸까? 여성에 대한 기록이 적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이 뚜렷했으며,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시대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여성, 자신만을 위한 삶을 선택한 여성은 정말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저 사극을 좋아하고, 사극 속 인물들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특히 내가 사랑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어떤 작품은 서사가 산만하거나, 고증에 오류가 있거나, 전형적인 로맨스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유독 빛났던 여성 인물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캐릭터들을 함께 나누고, 함께 사랑하고 싶다.
* 시대는1945년 광복 전까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 한국 배경, 주관적 기준
* 스포주의
'기별부인'이라는 말을 아는가? 요즘 말로 따지면 '이혼녀'이다. 조선시대에도 이혼이라는 제도는 존재했다. 다만, 그 사용자가 남성으로 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이혼은 대부분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내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여,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를 법적으로 명시해두기도 했다. 성격 차이도, 가정폭력도 아닌,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거나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등의 사유였다. 그 결과 아내는 그 어떤 반론도 제기할 수 없는 채로 이혼을 ‘당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남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 즉 ‘기별’을 받은 여성을 ‘기별부인’이라 불렀다. 기별부인은 다시 결혼하기도 어려웠고, 돌아갈 친정조차 없는 경우도 많았다.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어사와 조이>의 주인공 조이는 바로 그런 기별부인이다. 그녀는 억지로 시집가 세 해를 버틴 끝에, 스스로 이혼을 결심했다. 조이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인물로서, 조이에게 모든 가사노동을 떠맡긴 데다 생계 능력도 없었다. 조이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문제 삼아 관아에 직접 찾아가 이혼을 요구했고, 관아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미친 여자’ 취급했지만, 결국 이혼을 받아냈다.
스스로 이혼을 요구하는 당돌한 기별부인이라니. 손재주는 물론이고, 언문을 스스로 익혔을 만큼 명석하며,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생활력도 강하다. 퓨전 사극 속 능력 있는 히로인은 이제 낯설지 않지만, 조이처럼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자기 삶의 방향을 뚝심 있게 선택하는 인물은 드물다. 조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이언 또한 마찬가지다. 이언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초인이 아니고, 거대한 비밀을 감춘 인물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닥친 위기와 갈등은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함께 싸워나간다.
이언이 암행어사임을 알게 된 후에도 조이는 단순한 조력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보를 수집하고, 증거를 찾아내며, 사건 해결의 중심에 선다. 바느질 솜씨로 위조된 장부를 밝혀내고,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며, 위험한 잠입 수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조이는 점차 ‘암행수사단’의 핵심 일원이 된다. 그녀는 수동적으로 보호받는 여성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주체적으로 싸우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사랑'이 있다. 조이는 이언과의 관계에서조차 의존이 아닌, 평등한 동행을 택한다. 그들의 로맨스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해피엔딩을 맞이한 이후에도 극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조이와 이언이 결혼을 했을지, 아니면 그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걱정하며, 위험 앞에서도 서로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 관계로 남았을지 시청자들은 알 수 없다. 그 결말 또한 '조이' 다워서 웃음이 났다.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조이는 사랑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한다.
극의 악역 박태서의 농간으로 일행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조이에게 이언에게 입을 맞추라고 명령한다. 조이는 주저 없이, 남편도 아닌 이언에게 입을 맞춘다. 그녀의 행동에 놀라고, 그를 희롱하듯 바라보는 태서에게 조이는 단호하게 외친다. 여인이 헤픈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나는 이 한 마디가 ‘김조이’라는 인물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자도 원하면 이혼할 수 있고, 원하면 누구든 사랑할 수 있으며, 감정에 솔직하고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조이는 행동으로 증명한다.
<어사와 조이>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사극이지만, 단순히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청나라의 침입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 그리고 조선 사회에 깊게 박혀 있던 여성에 대한 혐오와 편견, 환향녀에 대한 낙인까지. 조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수많은 불합리와 차별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현실을 되짚는다.
그녀는 더 이상 ‘버림받은 여자’가 아니다. 기별부인이라는 이름조차 새롭게 쓰는 인물, 조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여성은, 사랑은, 그리고 ‘자기자신의 삶’은 누가 정하는가?
춤과 노래를 못하는 기생. 상상해본 적 있는가? 사극 속에서 기생은 흔히 주인공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이자, 사내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치정 싸움의 중심인물, 혹은 불필요하고 불쾌한 서비스 신의 도구로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의 기생은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대한제국기와 식민지시기 공창제도의 도입과 확산 과정에서 기생은 성매매 여성인 ‘창기’와 법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명확히 구분된 존재였다. ‘기생단속령’과 ‘창기단속령’이 각각 별도로 시행된 사실은, 기생이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니라 예능을 갖춘 직업적 예인(藝人)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기생은 늘 ‘성적 소비’의 상징으로만 그려져 왔고, 이는 후대 대중문화 속에서 기생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왜곡해온 원인이 되었다.[1]
우리는 사극에서 종종 남들보다 확연히 얇고 비치는 옷차림을 하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기생을 볼 수 있다. 문란한 관리들로 표현되는 남성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로코 녹두전>의 '동동주'는 춤도, 노래도 음치박치 수준인데다가, 사내를 홀리는 방법도 모르는 기생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기생’의 전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는 애교도 없고, 목소리도 걸걸하고, 말도 퉁명스럽다. 어떤 장면에서는 “자꾸 잔소리하시면 낭심을 맞는 수가 있답니다, 어머니?”라는 말을 태연히 내뱉기도 한다.
'기생'이라는 신분과는 정반대의 이미지지만, 오히려 그 점이 동주라는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 부조리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이를테면 어린 동기를 희롱하 양반에게 항의하며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장면이 그렇다. 조선시대 여인이 머리를 자른다는 건, 곧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는 선언에 가깝다. 하물며 기생이라면 말 다 했다. 꽃처럼 치장하고, 웃어주고, 분위기를 맞추는 게 ‘기생의 도리’인 시대에, 동주에게 머리카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또한 그녀는 손재주가 좋다. 치마자락 안에 망치와 못을 숨기고 다니는가 하면, 기방 뒤산에 아지트를 만들어 무언가를 끄적이며 몰두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동주의 재주와 총명함은 빛을 발한다. 무기를 든 남성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으며 오히려 당당하게 맞선다. 여성은 늘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충실히 따라야만 하는가? 마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묻는 듯 하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었던 동명의 웹툰 <녹두전> 속 동동주와는 성격이 꽤 다르지만, 드라마 <조선로코 녹두전> 속 동주의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과부촌에 사는 기생으로서,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려 애쓴다. 특히 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연대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은 결혼과 출산이 필수로 여겨지지 않는 오늘날의 가족 형태와도 꽤 닮아 있다. 이런 동주의 모습은,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아온 ‘기생’의 틀을 깨고 그 안에서 한 여성의 삶과 선택을 새롭게 상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작중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 미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미망인, 조선에서 가장 큰 호텔의 상속자. 아무리 봐도 한 인물이라고 하기엔 설정과다인 캐릭터다. 그런데 쿠도 히나는 그 과잉된 설정 속에서도 단 하나의 얼굴로 남는다. 누군가의 딸도,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쿠도 히나’로.
작중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모던보이들이 가득한 연회장에서, 히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담배를 피운다. 그것도 손가락 끝에 힘을 준 채, 여유롭고 단호한 얼굴로.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인물은 단순한 ‘호텔 사장’이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님을 보여준다.
히나는 처음부터 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강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스스로를 훈련한 사람이다.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사람을 돕고, 배신당할 걸 알면서도 사랑하며, 그 모든 선택을 끝까지 책임진다. 그녀가 조선으로 돌아온 이유 역시 누군가의 복수를 위한 것도, 조국을 위한 것도 아니다. 히나는 ‘그렇게 살아야 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렇게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 있는다.
극 중에서 히나의 주체성은 말보다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독립운동가임을 숨기고, 일본 경찰의 손아귀에서 사람을 구한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의 출발점은 애국심이나 대의명분이 아니다. 오히려 ‘정의롭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히나는 흔히 말하는 여성 영웅상과는 다르다. 그녀는 끝까지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행동한다.
그렇기에 히나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의 틀에서 벗어난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조선과 일본, 가족과 국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히나는 항상 비껴서 있다.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강하다. 드라마의 다른 인물들이 대의를 선택하거나 복수를 위해 움직일 때, 히나는 언제나 ‘나’를 기준 삼아 살아간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쿠도 히나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설정보다 더 강력한 서사, 미모보다 더 선명한 태도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드라마 초반, 일본 군인들에게 희롱당하는 여종 귀단에게 히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 한마디로 히나는, 순종과 눈물 말고도 다른 선택이 있다는 걸 일러준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남자도, 보석도, 사랑도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히나는, 그래서 참 멋있다.
- 드라마(2) 편에서 계속 -
참고문헌
[1] 미즈타니 사야카. (2020). 여악을 전승한 예인으로서의 기생에 대한 왜곡에 관한 연구 Ⅱ : 기생과 공창제도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43(2), 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