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보다 두려웠던 마음에 관하여
솔직히 말하면, 뻔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온몸이 찢어질 듯 괴로운 산통보다도, 더는 자유롭지 못할 일상보다도, 피로하고 피곤할 육아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뻔해지는 것이었다. 40년 가까이 나를 이루었던 것들을 하나씩 지워내고 그 빈자리를 아기로 빼곡하게 채워나가게 될 삶이, 아기가 커가는 시기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비슷한 장소에 가게 될 삶이, 나를 구성하는 가장 또렷한 성질이 아기 엄마인 삶이.
그렇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는 것은 내심 아기 엄마가 된 누군가를 뻔하게 여겼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을 자유롭게 빛깔을 뿜어내는 들판이 아닌 곧게 정비된 가로수 같다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SNS에 초음파 사진이 올라오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접하게 될 신생아 모습과 조리원 이야기, 뒤집고 기고 걷기를 지나 어린이집 생활까지. 그러고 한동안 뜸하다 어느새 보면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지인들의 삶이 내게는 정형화된 삶 중 하나로 여겨졌다. 남들 하는 대로, 남들 하는 만큼, 남들 하는 것처럼 사는 삶. 정말,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다.
내 안에 자리했던 이러한 마음을 나는 출산을 임박해지고 나서야 마주하게 되었다. 출산일이 달력 바로 다음 장으로 다가오자 입버릇처럼 말하던 문장이 있다. “누군가가 낳는 것이 아기였는데 그 누군가가 내가 되었네”라는 말. 임신부의 몸으로 열 달 가까이 살아가면서도 엄마가 되는 일에 관해서는 생생하게 실감하지 못했다. 내 뱃속에서 아기가 꿈틀거리며 살아 숨 쉬고 있는데도 출산과 육아는 남의 일로만 느껴졌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해내고 있는 일로만 생각했다.
남의 일이라 여기며 진정으로 공감하기를 미루어두었던 엄마 되기가 당장에 내가 뛰어들어야 할 일이 되어버리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마음의 돌기가 만져졌다. 마음의 돌기가 한 번 손끝에 닿고 나자 더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려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내가 무관심했던 엄마들, 또 육아 이야기냐며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던 글들, 육아 그래 맞아 당연히 힘들겠지 라며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순간들. 그리고 그들을 나도 모르게 재미없고 시시하다 여겼던 그 시절의 나와 나를 스쳐갔던 무수히 많은 엄마들의 목소리가 오돌토돌한 돌기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