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순간. 어젯밤까지 겨울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봄이 되는 순간. 나는 그 찰나의 냄새를 맡는다. 공기의 질감과 온도와 향기가 달라짐을 느낀다. 어제의 계절이 내일의 계절에 바통을 터치하는 그날은 언제나 마음이 말랑해진다.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느끼며 바뀐 계절의 공기를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본다. 지나간 날들을 흘려보내기도, 아쉬움에 붙잡아 보기도 한다. 왜 이제야 왔냐고, 왜 벌써 왔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이걸 ‘계절경계선’이라 부른다.
계절은 냄새와 함께 다가온다. 계절의 냄새에는 어김없이 기억의 흔적이 묻어 있다. 지난해 이맘때 날 할퀴었던 말, 보듬었던 손, 웃고 떠들며 보았던 영화, 거닐던 거리의 소음 등. 종종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후순위가 되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후각은 과거를 가장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감각이다. 과거를 맡게 하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가장 예민해지는 순간이 바로 계절경계선 위에 섰을 때다.
사계절이 있다는 게 싫었던 적도 있다. 계절이 향기를 바꿔 뿌릴 때마다 지난 과거에 한 대 맞아야 하는 게 아팠다. 시간이 1년 전으로 돌아간 듯해 붕 뜬 채로 지내는 것도 번거로웠다. 지금은 안다. 일 년에 네 번, 계절의 초입마다 감각할 추억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내년 이맘때엔 어떤 향기로 어떤 장면을 추억하게 될까. 기대와 설렘을 품으며 계절경계선 위에 가만 서 있어 본다. 나무가 고개를 흔들며 가벼운 춤을 추고, 바람이 그 사이를 스치며 장난스럽게 날아가는 걸 느낀다. 그렇게
새로운 계절에 실려 온 냄새를 맡고 만지다 보면, 지난 계 절의 고민은 어느새 사사로운 일이 돼 버린다. 묵은 고민은 이미 저만치 날아갔다. 그렇게 이 계절에 새로운 냄새 와 기억들을 적시며 또 다른 고민을 쌓아 간다.
바뀐 계절의 냄새를 한 움큼 마시며 오늘 하루를 가뿐히 보내기로 한다. 코끝을 살짝 들어 새로운 계절과 잘 지 내보려 인사한다. 어느덧, 어느새, 새 냄새와 함께 가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