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인생, 엄마에게 많이 들었던 말 세 가지만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딸 밥 먹었니.
그거 얼마 주고 샀어, 또.
하여간 유별나, 유별나.
특히나 유별나다는 말은 세발자전거를 탈 때부터 들어 왔다. 나는 냄새에 징그럽게도 민감했다. 음식이 상한 것 을 엄마보다 빨리 알아챘고, 엄마가 평소에 안 넣던 걸 넣 기라도 하면 귀신같이 맡고선 “엄마! 찌개 맛이 이상해!” 를 외치곤 했다. 빨래에서 조금만 꿉꿉한 냄새가 나도 “엄 마! 이거 왜 이렇게 빨았어!” 하고 복장 터지는 소리를 했다. “하여간 유별나, 유별나. 너는 또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그때마다 아빠는 당신한테 불똥이 튈까 봐 두 여자 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후각에 민감한 외동딸을 둔 어느 집의 흔한 풍경이다.
계절의 경계선에 다다를 때마다 느껴지는 기억의 냄새, 남편의 목덜미에서 퍼져 나오는 피곤의 냄새, 여행지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빗방울 냄새, 햇살 냄새, 비 오는 날 1교시 냄새, 강아지의 귀여운 꼬순내와 구수한 커피 향까지, 냄새에 관한 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잠시 멈춰 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냄새를 맡고, 무언가를 떠올리고, 아파하고, 행복해하고, 얼마간 외로워한다. 내 안에 머금은 냄새들이 많다. 이 냄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코끝으로 들어오고, 마음으로 나간다. 가끔은 마음으로 들어왔다가, 코끝으로 나간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맡아지는 냄새들이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나의 별스러운 후각이 빚어낸 냄새와 그 냄새가 불러들인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냄새에 관한 책이라니. 너다운 책을 썼네”라고 할 것 같고, 나를 드문드문 아는 이들은 ‘냄새에 관한 책이라니.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 하며 고개를 갸웃할 것이 다. 수많은 책 가운데 이 책을 선택한 당신이라면 ‘냄새에 관한 책이라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하며 반가워할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내 책의 주제가 냄새라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너 임신했을 때 엄마가 얼마나 입덧을 심하게 했는지 아니. 만삭 때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 얘. 얼마나 까 다로운 애가 나오려고 그러나 했지. 엄마가 소재 좀 줄게. 밤새 할 얘기 천지야. 언제 집에 와서 하루 자고 가.”
딸내미가 책 한 권 썼다고 이제 소재 얘기도 먼저 꺼내는 엄마다.
이 책에서는 바삭바삭 종이 냄새밖에 나지 않을 테지만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며 함께 추억할 냄새가 많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냄새, 각자의 기억과 함께 이 책을 즐겨 주시길. 이 책을 읽는 동안 스쳤던 향기들이 당신의 기억 저 편에 슬쩍 묻어나길. 그리고 언제고 그 향기와 함께 이 책이 떠오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