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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카보단 좋게, 데세랄보단 가볍게

올림푸스 PEN E-PL9 미러리스 카메라 리뷰

by 박세환
도대체 카메라를 왜 사는가?


이런 물음에서부터 나의 카메라 체험은 시작된다. 카메라를 왜 사는가?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 요즘 얼마나 많은데. 그럼에도 카메라는 화질 하나로도 선택 받을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업무에 있어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미지가 필요할 때, 예술 감각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할 때, 익숙해지기만 하면 폰카보다는 화질로써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보여주니까. 일상적이고 라이트한 사용에 있어서도 화질이 좋아 나쁠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찍어도 폰카보다 좀 더 예쁘고 훨씬 그럴듯하게 잘 나오는 사진을 갖고 싶을 때, 하지만 DSLR은 너무 부담스럽다면? 답은 미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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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Olympus)의 새로운 미러리스 카메라인 ‘PEN E-PL9’을 써봤다. 미러리스에 올인하고 있는 올림푸스. 펜처럼 누구나 편하게 갖고 다니면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PEN 시리즈, 그 최신품. 출시된 지 한 달 남짓 된 물건이다. 보급형 라인업이지만 소프트웨어로나 하드웨어로나 탄탄한 기본기와 여러 가지 매력적인 기능을 고루 갖춘 녀석. 스펙은 여기서 자세히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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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진 이름 로고부터 가죽 외관까지. 수십 년 전의 그 감성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다듬어가고 있는 듯하다. 첨단 디자인은 아닌, 그렇다고 구닥다리 디자인도 아니지만 클래시컬하면서 왠지 멋지다. 4가지 컬러 중에 이 브라운 색상이 제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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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들어있는 렌즈는 M.ZUIKO DIGITAL ED 14-42mm F3.5-5.6 EZ 줌 렌즈로, 초정밀 접사까지는 아니어도 물건을 가까이 찍기 좋고 멀찍이 있는 풍경을 넓게 잡기도 좋은 그런 렌즈. 그리고 크기는 작고 성능은 높은, 올림푸스의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이 적용. 어쨌든 일단 막 찍어도 잘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찍어보았다. 일단 내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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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정말 생각 없이 막 찍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 같다. 그냥 찍는다고 다 잘 나오는 건 아닌가 보다. 하긴, 예쁜걸 찍어야 예쁘게 나오겠지. 그래도 폰카보다는 피사체에 훨씬 집중이 잘되는 느낌이다. 살짝 아웃포커싱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

그럼 밖으로 나가본다. 폰카로 장면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참고로, 모든 샘플 사진은 크롭 외에 무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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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나간다는 건 사진을 제대로 찍겠다는 준비를 제대로 한다는 느낌이다. 한 손에 전화기를 달랑 들고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번거롭지만, 400g이 되지 않는 무게는 충분히 수용할 만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쥐고 있는 순간 순간마다 내가 사진에 제대로 임하고 있다는 그 뿌듯함이 자아도취로 변해온다. 한 마디로, 사진 찍는 나, 쫌 멋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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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카로 탭탭탭 캡쳐하듯 찍는 것과 셔터를 지긋이 눌러 찍는 것과는 피사체에 다가가는 느낌 자체가 다른 것이다. 똑같은 물이라도 종이컵에 따라 마시는 것과 머그컵에 마실 때 맛이 다르게 느껴지듯이. 음… 좋은 비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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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당기지 않으면 이렇게 넓은 풍경이 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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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로 당기면 이렇게 보여진다. 디지털 줌은 조금 뭉개지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잘 쓰지 않는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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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바닥이 새삼 달라 보인다. 구도를 생각하면서 찍어보니 어라? 꽤 그럴 듯한 건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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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꽃이 많이 피었다. 동네가 예뻐졌다. 봄은 이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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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봤을 때 예뻐서 다가갔더니 가짜 꽃이었다. 이 메마른 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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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하니 보기 좋네. 열심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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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되거나 무언가 덧칠되지 않고, 쨍하고 선명하게, 있는 그대로 잘 나온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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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카가 그냥 커피라면, 미러리스는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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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정리는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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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뜻하다 못해 너무 뜨거워서 잠시 그늘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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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이라 해도 처음 태어날 때부터 더럽진 않았을 것.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한낱 쓰레기통도 다시 쳐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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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편의점 도시락에는 삼겹살도 들어있다. 맛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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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은 뒤엔 커피도 한 잔 마셔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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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루를 달려온 나에게 휴식을 주는 듯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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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재래시장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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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는 역시 시장표 꽈배기. 설탕이 듬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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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도 사진은 제법 그럴듯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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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빛이 많은 낮보다 선예도는 조금 떨어지고 거칠어지며 잘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꽤 안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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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의 AP 모드에서 라이브 컴포지트로 찍으면 이런 사진도 만들 수 있다. 컴퓨터 배경화면에서만 보던 멋진 장면을 우리 동네에서도 찍을 수 있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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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필터를 써보는 것도 재미있다. 올림푸스는 상당히 많은 아트필터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 중에서 이번 PEN E-PL9에 새로 들어갔다고 하는 인스턴트 필름 효과는 꽤 마음에 든다. 불그스름한 톤과 높아진 채도가 정말 필름의 감성을 느끼게 만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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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칙칙한 길바닥에도 스토리가 담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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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제목은 ‘소통과 단절’로 지어보았다. 인화해서 모니터 주변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붙여놓으면 힙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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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두꺼운 사진 앨범을 뒤적이다 발견한 듯한 이 묘한 빨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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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로 틸트되는 디스플레이가 무척 편리하다. 자세를 낮춰 찍기도 좋고, 셀카를 찍기도 좋고. 영상을 즐겨 찍으면 더 매력적인 카메라가 될 것이다. 4K 영상도 안정적으로 촬영이 가능하다. 해상도를 조금 포기하면 FHD로 아트필터를 실시간 적용하면서 촬영할 수도 있다. 찍으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폰카보다 훨씬 흔들림 방지 성능이 뛰어난 게 인상적이었다. 뽀얗고 쨍한 화질과, 번지듯 부드럽게 작동하는 포커싱의 감성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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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리를 해볼까. 올림푸스 PEN E-PL9은 예쁘고, 컴팩트하고, 좋은 화질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미러리스다. 나처럼 폰카의 광각과 수채화 화질에도 관용을 충분히 베풀 줄 아는 라이트 유저에게는 받들어 모셔야 할 듯 매우 과분한 카메라일 것이다. ‘좋은 사진’을 위해 조금 더 수고를 즐길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는 유저를 비롯해,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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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냥 펑펑 눌러도 웬만큼 이상의 화질을 자랑하는 편한 카메라를 갖고 싶은 사람
2. 또는, 촬영 시에 조작과 세팅을 더 즐기고 싶은 작가 마인드를 가진 사람
3. DSLR은 너무 무겁고 번거로우니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를 찾는 사람
4. 수십 년 전의 클래식한 카메라 디자인이 좋은 사람
5. 주위 사람들에게 ‘오, 이거 실제로는 처음 본다’, ‘특이하네’, ‘얼마라고? 진짜?’ 라는 말을 들을 때 희열을 느끼는 취향





사진에 빠지기 좋은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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