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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21. 2019

나는 집에서 드럼을 친다 – 전자드럼 구매기 Ⅰ

이제 가자. 전자드럼의 세계로!


아, 재미 없다.



내 일상이 재미 없는 이유

를 생각해보았다. 도전이 없었고 열정이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하루하루 숨만 쉬며 회사와 집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날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밤마다 주말마다 놀러 다니고 먹고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데 나에게는 즐길 거리가 이렇게 없나?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뜻한 봄 햇살은 자꾸 밖으로 나오고 싶게 만든다. 뭔가에 홀린 듯이 밖으로 나온 2007년의 어느 봄날. 나의 발걸음이 닿았던 홍대는 언제나처럼 활기찼다. 어느 라이브클럽을 지나칠 즈음.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누군가 공연을 하고 있나 보다. 시끄러워 죽겠네. 보지 않아도 그 광란의 현장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음악의 힘은 위대하고 멋지지.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어디에 있든 그곳이 곧 나만의 완벽한 세계가 된다. 나는 특히 록을 좋아한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강렬한 사운드의 매력. 샤우팅 보컬, 기타, 베이스도 모두 좋지만 나는 드럼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심장을 쿵쿵 두드리는 저음부터 날카롭게 챙챙 뻗는 고음까지 다룰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 온 몸을 들썩이게 하는 마법의 액션감. 그리고 이리저리 번쩍이며 시선을 강탈하는 웅장한 세트의 비주얼까지. 멋지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음악을 듣다 보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특정 곡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될 때가 있다. 그 날은 이거였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신해철의 프로젝트 밴드였던 ‘모노크롬’의 원곡을 한국 스래쉬 메탈의 자존심 ‘크래쉬’가 리메이크했던 곡. 시종일관 파워풀하게 몰아치는 사운드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원하는 걸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기타로 두들겨 맞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자.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그래. 드럼이다. 대학 시절 잠깐 몸 담았던 동아리에서 두어 달 동안 고무패드만 두드리며 기본기를 다졌던 적도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드럼을 치는 거다. 록 스타가 되겠어.   



왜 하필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기타나 베이스는 방 안에서 홀로 조용히 연주할 수 있고 노래는 코인 노래방에서라도 마음껏 열창할 수 있는데. 드럼은 그럴 수가 없다. 학원에 등록을 해볼까? 하지만 나의 순수한 마음을 레슨에 얽매이도록 만들긴 싫다. 교회라도 나가서 성가대 반주를 해볼까? 하지만 내가 믿는 신은 나 자신 밖에 없기 때문에 교회도 가기 싫었다. 오락실의 드럼매니아 역시 무언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답은 독학하기. 미스터빅의 드러머 팻 토페이도 세계적인 드럼 세션 데니스 챔버스도 드럼을 독학으로 배웠다고 했다. 나도 해보자. 독학은 혼자 독하게 해야 제 맛. 이래 봬도 초등학생 때 단소 실기 시험을 본 뒤 양로원 재롱 잔치 TF까지 참여하게 되었던 나다.   



그래. 드럼을 사기로 했다.

드럼. 너를 갖고 말 거야. 동아리방, 합주실, 교회, 오락실에 있는 드럼 말고 나의 드럼을 갖고 말 것이다. 외국 영화에서도 차고 같은 곳에서 혼자 드럼을 치며 노는 모습을 많이 봤다. 너무 멋져. 하지만 무턱대고 집에 드럼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드럼 소리는 정말 크다. 천둥번개처럼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다른 좋은 방법이 분명 있을 거다. 머리를 굴려보자.



방법 1.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단독 전원주택을 먼저 산 뒤 지하실에 방음벽을 설치하고 드럼을 사서 세팅한다.

– 장점 :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드럼을 즐기는 게 가능하다.
– 단점 : 숨만 쉬면서 10년은 일해야 주택부터 살 수 있다.


방법 2. 방음공사를 하고 드럼을 산다.

– 장점 : 집을 사는 것보다는 돈이 훨씬 적게 든다. 천만 원 정도는 1년이면 모을 수 있을 듯.
– 단점 : 나중에 이사를 갈 때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방법 3. 전자드럼으로 눈을 돌려본다.

– 장점 : 실제 드럼과 꽤 비슷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다.
– 단점 : 위의 방법들에 비하면 금액도 적게 들지만 그래도 부담은 있다.   



ⓒrolandcorp.com.au

전자드럼?!

낙원상가를 종종 들락거렸을 때 보았던 전자드럼. 오락실에 있던 장난감처럼 생겨서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이 쓰이는 엄연한 ‘악기’다. 기타에 통기타(어쿠스틱)와 전자기타가 있는 것처럼 드럼에도 진짜(어쿠스틱) 드럼과 전자드럼이 있다.  


“사장님, 이거 전자드럼 맞죠?”
“네 맞아요. 쳐보셔도 돼요.”
“장난감 같네… 이걸로 드럼처럼 연주할 수 있어요?”
“아 그럼요. 가정집에서도 많이 쓰고, 세션들은 스튜디오에서도 쓰죠. 집에 놓으시려고요? 그럼 충분하죠. 일단 한 번 쳐보세요.”
“……오?!”
“소음이 거의 없어요. 바닥에 매트만 깔면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칠 수 있고. 소리는 헤드폰으로 들리죠. 앰프 연결하셔도 되고.”  


고무 패드에서 빠운스 빠운스 튕기는 드럼 스틱의 이 손맛. 마치 진짜 드럼 같다. 때렸을 때 소음도 크지 않다. 헤드폰을 꽂으면 드럼 사운드는 나만 들을 수 있다. 모듈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소리의 종류도 막 바뀐다. 진짜 드럼 같은 소리도 났다가 테크노 비트처럼 변하기도 한다. 이건 혁명이야.

드럼을 만드는 브랜드는 꽤 많이 있다. TAMA, YAMAHA, Pearl… 묵직한 터프함은 TAMA, 부드러움은 YAMAHA, 대중적이고 노멀한 Pearl, 단단함은 SONOR, 클래식함은 Ludwig이라고 어느 선배의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전자드럼을 만드는 브랜드는 조금 달랐다. 모든 드럼 브랜드가 전자드럼도 만드는 건 아니었다. Roland가 가장 많이 보인다. 전자악기를 많이 만드는 곳이다. 그리고 YAMAHA도 있다. Z-drum이라는 국내 브랜드도 있고, 중국의 MEDELI…   



그래서 나는 무엇을 사야 할까?

수많은 제품 중에서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워보자.


진짜 드럼처럼 생겨야 함

– 그저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전자 오락기를 원했던 게 아니다. 널빤지처럼 만들어진 것들 말고 진짜 드럼 세트에 앉아서 연주하는 것 같이 멋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진짜 드럼 앞에 앉았을 때에도 이질감이 없겠지?


기본적인 구성은 되어 있어야 함

– 쿵쿵 베이스, 탕탕 스네어, 칙칙 하이햇, 챙챙 크래쉬, 딩딩 라이드, 두구두구 탐탐까지. 패드와 심벌즈의 구성을 생각해보니, 최소한 5기통 드럼처럼 되어 있는 걸로 골라야겠다.


시끄럽지 않아야 함

–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드럼처럼 연주할 수 있으면서도 당연히 시끄럽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웃을 배려하는 멋진 남자니까.


도전할 만한 가격이어야 함

– 나의 완전히 새로운 취미를 위해 후회없이 투자하면서도 오래 즐길 수 있는 정도로 예산을 투자한다. 입문자를 위한 저렴한 제품은 몇 십만 원 수준이고 전문가가 쓰기 좋은 제품은 무려 천만 원도 넘는다. 백만 원 ± 50만 원 정도로 설정하자.




그래서 내가 고른 건 ROLAND TD-3
ⓒrolandcorp.com.au

Yamaha와 Roland 사이에서 발음이 더 고급지고 쉽다는 이유로 Roland를 선택했다. 물론 전자악기를 주로 만드는 브랜드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Roland 제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구매한 건 Roland TD-3 패키지다. 3개의 심벌즈에 5기통 구성. 실제 드럼과 유사한 환경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세팅이다.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있을 건 있고 어디 하나 빠지는 데도 없다. 초보용 이상으로 세밀한 설정 기능을 갖춘 모듈까지 욕심 부리지 않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모델.

가격은 인터넷몰 기준으로 120만 원선. 악기를 수입해서 유통하는 국내 인터넷몰은 저마다 패드나 페달의 구성을 조금씩 달리해서 가격을 조정한다. 혹은 여러 사은품을 끼워주기도 한다. 잘 비교해서 더 저렴한 걸 찾을지 사은품으로 만족할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드럼 의자와 앰프, 드럼 스틱 등의 사은품을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의자나 스틱은 따로 살 걸 그랬다. 사은품의 퀄리티가 좋을 리 없지.

그럼 이만 나의 드럼 동반자 Roland TD-3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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