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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0. 2020

자발적 기계치의 에어팟 찬양기

코로나 시대의 가정 보육 필수템

   2004년, 아이리버가 평정한 한국의 mp3 시장에서 아이팟은 대중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종종 훑어보던 김동률 홈페이지에서 처음 만난 그 아이는 단박에 나를 홀렸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 48만 원을 주고 데려온 아이팟은 하얗고 매끈한 몸체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해당 폴더에 음원을 몽땅 집어넣고 컴퓨터와 연결하면 되는 아이리버와 달리 아이팟 사용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시디와 다운로드한 음원을 집어넣고, 정렬하고, 홀랑 날리는 과정을 반복하느라 2-3주를 낑낑댔다. 아이팟은 고사하고 스티브 잡스가 누군지도 모르던 시절, 사용법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아이팟은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무료하고 불안한 시간을 잊게 해 준 고마운 친구였으나 나는 끝내 아이팟 구동 소프트웨어인 아이튠 사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음원을 날리고 다시 넣는 바보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도 매뉴얼을 공부하는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 왜 설명서를 찾아보지 않는 것이냐 묻는다면 뻔뻔하고 고집스럽게 대답하겠다. 어차피 기본 기능만을 사용할 거라 디테일은 알아봐야 소용없다고. 아이팟을 지나 아이폰 3G, 4G를 사용하면서도 그놈의 동기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찌어찌 음악을 집어넣고 재생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고도 아이폰을 계속 써온 걸 보면 누구나 매뉴얼 없이 직감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애플의 제품 개발 방향은 상당히 성공적인 셈이다. 그렇다. 나는 전자제품 설명서를 읽지 않으며 고급 사양의 디바이스를 사고도 기본 기능만을 사용하는 자발적 기계치이다.         


  전자제품과 친해지지 못하는 습성은 여전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어쩌면 친하지 않다 못해 두려워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경험적으로 새로움에 대한 저항과 외면은 노화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내가 멋진 예외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 핑계를 덧붙이자면 나는 쏟아져 나오는 신박한 기능의 제품들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궁금해야 관심을 가지고 살필 테고 그러다 보면 사서 써보기도 할 텐데. 나는 오브제로 두어도 손색없을 심플하고 아름다운 제품들이 어떤 기능을 탑재했는지 내 생활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들지 전. 혀. 궁금하지 않다. 물론 사용법 익히기를 귀찮아하는 내 게으름 탓도 있지만 그 보다 이미 충분히 편리하게 살고 있으니 슈퍼 울트라 파워풀 추가 기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각종 디바이스의 변화 속도가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과학 기술에 무지몽매한 문과생이라는 게 변명이 될 런지 모르겠다.     


   그런 내게 여차저차 하여 에어팟 프로가 손에 들어왔다. 블루투스의 대중화로 유선 이어폰 사용자가 세상 힙해졌다는데 힙해질 기회를 잃었다며 웃었다. 에어팟이라. 갖고 싶어, 필요해와 비스름한 단어조차 떠올려 본 적 없는 물건이다. 에어팟이란 이름도 검색으로 다시 확인해야 했으니 내 무관심을 무엇으로 더 표현할까. 어제까지 존재감 제로였던 클래스메이트가 월광을 연주하던 순간, 그 아이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시선을 뗄 수 없던, nobody가 somebody로 변하는 순간의 마법을 경험하는 소녀처럼. 에어팟은 예고 없이 내 마음을 훅 파고들었다. 아이팟을 사진으로 보았던 그때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켠 순간 더 정확히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활성화되던 순간, 드라마 속 CG처럼 푸른빛이 원기둥을 만들며 나를 둘러싸 세상 속에 홀로 존재하게 했다. 쓰고 보니 세상 속에 홀로라는 표현은 좀 과하다. 사실 코로나 이후 내 세상은 거실로 한정되었으므로 에어 팟은 아이들이 실랑이하는 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장난감 소음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고 축소 정정해야겠다. 나에게 있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의 혁신 포인트는 주변 소음의 볼륨을 줄여줌으로써 소음 유발 대상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노는 소리만 작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듯 착각을 할 수 있다 것이 핵심이다. 이 신비로운 느낌은 그리하여 지난 몇 달간 내게 절실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것도 죄책감 free로(아이들을 두고 혼자 외출했을 때 느껴지는 불안함, 일말의 미안함, 그럼에도 미칠 듯 행복한 아이러니를 뭉뚱그려 죄책감이라 하자). 와우. 최근 내 짜증 횟수와 강도가 줄었다면 그건 전적으로 선택적 고립감을 위한 필수템, 에어팟의 공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은 비밀로 해 두어야겠다. 어떤 경우에 아이폰에 에어팟 배터리의 잔량이 표시되고 또 안 되는지, 어떤 때 한쪽 이어폰을 빼면 음악이 끊어지기도 하고 또 계속 나오기도 하는지. 늘 그랬듯이 사용법을 찾아보는 대신 이것저것 눌러보고 세상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끽하는 중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당당하고 뻔뻔한 기계치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한 번씩은 신기한 기계들을 눈여겨볼 작정이다. 현재는 이름도 형체도 없이 누군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할지도 모를, 내게 다시 한번 월광을 연주하던 소년이 되어 줄 그 무엇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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