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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0. 2020

밥과 사랑의 상관관계

  오늘 아침 어떤 메뉴로 식사하셨나요? 담백한 식빵과 샐러드도 좋고, 뜨끈한 누룽지 한 그릇도 현관문 밖 한기를 이기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한 분은요? 네, 굉장히 많네요. 혹시 어머니의 5첩 반상을 받고 나온 분도 있으신가요? 5첩 반상이면 밥, 국, 김치류와 장류를 제외한 반찬이 5가지라는 것 알고 계시려나요. 그러니 5첩을 차리려면 일반적인 4인용 식탁이 가득 찰 거예요. 보통 정성은 아닌 거죠. 저도 가끔 좋아하는 반찬으로 채워진 엄마 밥상을 마주하고 울컥할 때가 있습니다. 엄마가 밥 차릴 때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하죠. 왜 저는 유독 밥 앞에서 그녀의 사랑을 곱씹어보게 되는 걸까요.     



  집안일을 크게 청소, 빨래, 요리 세 가지로 나눠 볼게요. 한 10여 년 집안일을 하다 보니 이 세 가지 일에 분명한 호오(好惡)가 생겼어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셋 중에서 요리가 제일 싫습니다. 귀찮다고 거를 수 없다는 점, 많게는 하루에 세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 요리를 싫어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횟수의 문제가 다는 아닙니다. 주부가 되고 나서 요리는 단지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달라졌거든요. 엄마들은 낮부터 저녁에는 또 뭘 해 먹나, 내일은 뭐 먹지를 고민하는 데서 이미 요리를 시작합니다. 메뉴를 정할 때는 가족들의 취향과 입맛을 따져 보는 것은 물론이고 제철 식품을 이용한 특식도 고려합니다. 추워졌으니 굴을 먹어야 하는데 00 이는 비리다고 굴국을 싫어하니 굴튀김을 해볼까, 냉이와 달래 정도는 먹어야 봄이 오는 걸 느끼지, 복날이니 보신도 시킬 겸 삼계탕을 끓여야겠다. 고민 끝에 메뉴를 정하고, 장을 봅니다. 지금이야 온갖 당일 배송 사이트가 즐비하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장을 보고 짐을 나르는 모든 것이 엄마의 몫이었겠지요. 이제 식재료를 정리합니다. 종류에 따라 냉장고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도 있지만 조개는 소금물에 해감 시켜야 하고, 갈비는 물을 갈아 가며 핏물을 빼야겠지요. 사실 썰고, 끓이고, 볶는 실제 요리에 필요한 시간은 한 시간 남짓입니다. 베테랑 주부라면 삼십 분이면 충분할 지도요. 먹는데 필요한 시간은 어떤가요. 빨리 먹으면 5분, 천천히 먹더라도 2-30분이면 끝납니다. 그대는 잘 먹었습니다 하고 티브이 앞으로 자리를 옮기면 그만이지만 엄마의 요리는 아직입니다. 정리가 남았잖아요. 개수대 그득한 설거지가 한바탕 끝나면 이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야 합니다. 수고한 엄마를 위해 직접 설거지를 했거나 쓰레기장에 다녀온 그대, 많이 칭찬합니다. 이제 메뉴 고민에서 시작해 쓰레기 정리까지 긴 과정을 거친 요리가 진짜 끝났습니다. 하지만 끝은 진짜 끝이 아니에요. 내일 아침에도 밥은 또 먹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엄마들은 이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습니다. 에이, 매일같이 저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라는 딴지는 곤란해요. 물론 며칠치 장을 한꺼번에 보기도 하고,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외식을 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평범한 가정의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밥을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는 과정은 대동소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고 보니 분명 해지네요. 오랜만에 들른 친정, 엄마가 나를 위해 차려준 식탁 앞에서 왜 눈물이 날 뻔했는지요. 이 밥상이 어떻게 차려졌는지, 그 과정을 하루에 두세 번씩, 40여 년에 걸쳐 반복한 엄마의 수고를 온몸으로 이해합니다. 내 앞에 놓인 손 만둣국이 사랑 없이는 김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감사드리고요. 하지만 엄마의 노고와 희생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과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매끼 따뜻한 밥과 다른 반찬으로 상을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는 일이 달갑지 않거든요. 몸이 고된 것보다 크게 의미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일을 변주해가며 무한 반복하는 데서 오는 지루함이 견디기 힘듭니다. 먹는 행위 자체가 의미 없지는 않지만 제가 메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뭘 먹어도 배가 부르면 그만인 타입의 사람이라 더 그런가 봅니다. 오늘은 밥도 설거지도 싫으니 시켜 먹자는 제안에 딸아이가 성을 냈어요. 엄마는 우리한테 밥 해 주는 게 그렇게 귀찮아? 몸에 좋지도 않고, 조미료 투성이인 배달음식을 왜 또 먹냐고 잔소리를 시작하네요. 아마 언젠가 제 입을 통해 나왔던 말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겠지요. 계란 프라이에 김이랑 먹어도 좋으니 집 밥을 달랍니다. 집 밥이라. 단어만으로 이미 설거지까지 마친 듯 피로하네요. 



  제 딸아이가 마흔을 눈앞에 둔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저처럼 눈물을 삼키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밥이 아니더라도 분명 다른 순간에 저를 떠올리고 추억할 것입니다. 음, 함께 어린이 탐정 드라마를 보며 범인 맞추기를 하던 어느 따뜻한 오후였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놀아달라는 성화는 못 들은 척 이어폰을 꽂고 책 읽던 모습이나 밤새워 드라마를 보고 비몽사몽이던 얼굴을 떠올려도 어쩔 수 없지요. 엄마의 역할과 개인적 욕구 사이에서 균형 맞추기가 쉽지 않았음을, 때로는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 먼저였던 순간도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마도 사람이니까요.         


       

  사실 그냥 밥을 할까? 고민이 찰나에 스쳤어요. 우리 엄마가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힘든 내색 없이 차려주신 밥과 도시락을 먹고 자란 저는 딸에게 말합니다. 배달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반찬을 사 먹는다고 해서 엄마가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너희가 귀찮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적어서는 더더욱 아니고. 엄마는 음식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고 싶을 뿐이야. 주방에 서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아직 끝내지 못한 글을 마무리하고 싶고, 드라마도 보고 싶어. 아니면 같이 깔깔대며 꼬마 니꼴라를 읽거나 손잡고 산책 가는 건 어때? 아이의 뾰로통한 표정에 변화가 없지만 다시 묻습니다. 

       

“그러니까 짜장면 먹을 거야? 짬뽕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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