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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6. 2020

오늘도 베란다는 쓰레기장

비 친환경적 생활의 변명

  새벽 배송업체의 택배를 처음 받았던 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주말마다 *마트와 *플러스에 가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겠다는 다행스러움이 첫 번째였다. 차 없이 살고 있는 중이라 장을 보고 짐을 나를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수를 하기도 전, 이미 문 앞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내가 진정 배달의 천국인 한국에 있음을 실감했다.      



  주문한 물건 종류와 개수를 확인해 냉장고에 넣고 나니 눈앞에 한 무더기의 쓰레기 더미가 생겼다. 15구 달걀 한 팩, 우유 한 병, 두부 두 모와 채소 조금을 샀을 뿐인데 정리해야 할 박스와 얼음팩, 충전재의 부피는 그 몇 배였다. ‘아, 내가 지구와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구나’가 바로 두 번째로 든 생각이다. 거창하게 부풀린 것 같이 들리겠지만 정말 딱 그랬다.     



  그리하여 다시는 당일 배송업체를 이용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와 같은 결말이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몸의 편리함은 마음의 불편함 정도는 가볍게 이겼다. 대신 다른 업체를 이용해 보기로 했는데, 자체 제작 배송 박스를 사용하고 수거해 재사용한다는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두 번째 역시, 박스의 개수가 줄어드는 만큼 마음의 가책도 줄어들 거라는 기대에는 못 미쳤다. 에어캡이나 얼음팩이 가득 들어 있고, 종이 박스에 충전재를 넣어 배송되는 경우도 많아 쓰레기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물론 상하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식품을 배송해야만 하는 업체의 입장을 이해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일주일에 48시간 동안만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달리 말하면 나머지 5일 동안은 재활용 쓰레기와 함께 살아야 한다. 주중에 부피가 큰 택배를 여러 개 받았거나,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었다면 종류별로 분리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쓰레기인 물건들이 베란다에 넘친다. 그래서 일요일 10시는 베란다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포대에 플라스틱이며 스티로폼을 쏟아붓고 종이 박스가 산을 만드는 것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동네마다 쏟아져 나올 저 엄청난 양의 쓰레기는 대체 어디로 가는지 걱정스럽다. 우리 집 베란다가 깨끗해진 그만큼 지구의 어느 곳은 분명 더러워지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샴푸나 세제를 덜어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 리필 가게가 생겼다는 기사를 읽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지만 내가 빈 샴푸 통을 챙겨 버스를 타고 그 가게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지만 결코 하지 않을 일을 구분할 정도로는 나이가 들었다. 이미 전적도 있다. 출산을 기다리며 아이의 피부와 지구를 위해 기저귀 쓰레기는 만들지 않겠다는 거창한 포부로 천 기저귀를 샀다. 그러나 아이의 백일잔치를 하기도 전에 이미 일회용 기저귀가 배송되기 시작했으니 내 결심은 참으로 무르고 약한 것이었다. 눈앞의 편리함과 게으름은 자주 결심을 이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일회용품과 넘쳐나는 쓰레기에 눈과 마음은 항상 불편하다. 괴로움을 무시해가며 또 택배를 주문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개인적 차원의 환경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미약하나마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고 일회용품을 자제하는 노력을 보태고, 달걀처럼 포장재가 많이 쓰이는 재료는 슈퍼에 가서 직접 구매하며 미안함을 전한다.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박한 아이디어를 기다린다. 완전히 분해되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이 상용화된다면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반드시 사용하겠다는 다짐을 굳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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