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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8. 2020

우리 모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큰 걱정은 층간소음이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소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란 아이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어진 요즘, 일상의 소음을 견디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이해한다.                           

  


  홍콩에 거주하는 동안 우리 집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쟁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홍콩 집은 대게 좁고 천장이 높은데, 건축방법이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악기 소리를 제외한 생활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윗집에서 축구를 해도 아래층인 우리 집에는 별 다른 울림이 없었으니 홍콩 로컬 뉴스에 무지한 외국인의 오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은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많으며, 경찰이 올 수도 있다는 은근한 협박을 곁들여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던 어느 날이었다. 줄넘기 연습을 위해 내려간 놀이터에 진짜 경찰차가 출동해 있었다. 일몰 무렵이라 주위가 어스름하여 경찰 아저씨 등에 적힌 police 글자는 더 반짝였다. 다가가 슬쩍 들어 보니, 아이들의 쿵쾅거리는 발소리에 항의하러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갔고, 이에 화가 난 위층 사람이 경찰을 부른 것이었다. 경비실이나 관리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방문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다툼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층간 소음 문제로 경찰이 출동한 것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그 날로 시키지 않아도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얼마 후,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울시에서 만든 층간소음 예방 홍보 전단이 붙었다. 가구를 끌지 않고, 늦은 시간에 기계 이용을 하지 않으며, 쿵쿵 뛰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차원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중 한 남자가 긴 막대를 천장을 향해 휘젓고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해당 그림을 보고 아이들이 한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엄마, 이건 피냐타 하지 말라는 거지? 근데 피냐타가 그렇게 시끄러운가?" 웃음이 터진 것은 2초쯤 후였는데, 내가 아이들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보복 소음을 행위를 하지 말라는 그림을, 생일날 과자며 인형이 든 상자를 막대기로 두드려 깨는 멕시코 전통 놀이 피냐타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아래층에서 위층을 향해 막대기로 천장을 두드리는 장면을 단박에 이해했지만 아이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들이 가진 정보 안에서 피냐타라고 이해했던 것이다.                  


  

  한바탕 크게 웃고, 보복 소음에 대해 알려주었다. 모르는 것을 설명해줄 때 나에게 귀 기울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대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 다행스러웠고, 엄마는 어떻게 그걸 다 알아?라는 말을 들을 때면 으쓱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뭐랄까, 저 그림을 피냐타로 이해하는 너희가 나보다 낫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층이 시끄러울 때 막대로 천장을 치거나 음악을 쾅쾅 울려 되갚아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된다고 받아들이게 될까 걱정스러웠고,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안타까웠다.              



  윗집에 사는 두 아이는 오늘도 열심히 뛴다. 소리를 지르고 싸우기도 하고, 늦은 시간에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심해 줄넘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대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때로는 너무하다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관리실에 전화를 할 만큼 화가 나거나 짜증스럽지 않았다. 또래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아래층에 대한 미안함으로 견디기가 수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뛰면 바로 자제시키려고 하지만 내 제어는 뛰는 순간보다 한 박 늦게 마련이다. 장난감 소리를 줄이기 위해 매트를 깔고 그 위에서만 놀게 하지만, 매트 위에서는 안 된다며 바닥에서 팽이치기를 하는 날도 있다. 가끔은 나도 듣고 싶지 않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를 줄이려 전자피아노와 약음기를 구입했다. 그렇지만 레슨 시간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니 누군가는 아이들의 어설픈 연주 소리를 견뎌주고 있을 것이다. 아직 층간소음으로 관리실의 전화를 받은 없는데 우리 가족이 만들어내는 이런저런 소음을 이해해주는 마음 넓은 이웃들을 만난 건 행운이라 여긴다.           



  층간 소음은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 있으며,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복불복 게임에 참여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식적인 차원의 배려와 이해 외의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뛰지  않고 걷기'를 수시로 주지 시키고, 눈 뜨자마자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둘째에게 헤드폰을 씌우는 것으로 최소한의 배려를 실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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