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여정이란.
'푸르른 빛의 라디오 주파수 불빛이 어둡기만 한 방을 비춘다.', '오늘을 살아내기가 이토록 버거운 건가?', '이제는 진정 삶의 여정에 맞힘 표를 찍어야 하는 건가?'
냉골 같은 시멘트 바닥, 열선 하나 깔려 있지 않은 3평 남짓한 월세방.
이미 수도는 얼어 물이 나오지 않으며, 쥐새끼들의 찍찍 거리는 소리가 책상 아래 책이 쌓인 곳에서 들려온다.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을 내 보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온기라도 3평의 작은 방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2002년 여름,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했던 계절을 지난 그 해 겨울은 나의 삶에 열기가 아닌 냉기로 가득했던 삶이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난 뒤 나의 삶에 드리워진 희귀병의 그림자. 그 그림자는 너무 강력해서 모든 삶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렸다.
병명을 알 수 없어 싸웠던 일련의 시간들이 오히려 더 낫다고 해야 할까?,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명을 얻고 나니, 왠지 내 몸이 더 굳어가면서 생명의 주기가 짧아지는 기분이다.
'차라리, 귀신에 홀려 아픈 거라면.', '차라리, 정신적인 문제로 심리적 병을 앓고 있는 거라면.', '정신과 교수님과 신경과에서 말한 심리적 문제라면.' 온전하지 못한 정신과 희귀 난치성이 복합적으로 침투해 있는 몸뚱이는 참으로 나약하고 추악했다. 키는 184mm 몸무게는 48kg 예전에 90kg까지 나갔던 우람한 몸뚱이는 온데간데없고, 약물에 찌들어 위액과 함께 외부로 빠져나간 것 같다.
얼굴은 쾡하며, 눈이 쏙 들어가 마치, 안와골에 눈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 거대한 싱크홀이 두 군데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살이 급격하게 빠진 탓에 몸의 살들은 눈물 흘리듯, 흘러내렸다. 튼살은 칼자국처럼 온몸에 상처를 냈으며, 육체의 고통은 날로 심해지고, 걸어가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쓰러지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집안에 있는 시간, 아니 독방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길게는 40일가량 밖을 안 나간 기억도 있다. 햇볕이 싫어 들어오는 모든 빛을 신문지로 막고, 혹시 누가 나의 삶을 염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라 문을 잠그고, 문도 열어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부모님도 이런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세상에서 보낸 염탐꾼이라고 느낀 나는 부모도 멀리 했다. 밥은 모든 가족이 외부로 나간 시간 몰래 가서 허기만 달래는 게 전부였다. 그냥 목숨의 연명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힌 쌀밥과 물 그리고 하얀색, 초록색, 빨간 알갱이가 들어가 있는 12알의 알약들이 내 몸으로 들어와 요동치는 나의 위장은 언제나 쓰렸다. 가끔씩, 구역질이 흘러나왔다. 구역질의 쓰디쓴 약물 맛은 뱉어내어도 계속해서 내 입에 자신의 채취를 남겼다.
‘차라리 죽었으면.’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눈을 감는 순간 항상 되뇌었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택했던 내게 삶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었던 운명의 장난은 다시는 죽음 앞으로 날 데려가지 못했다. 마치 죽으면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기정화 된 사실이라도 된 것처럼. 죽음 앞에 당도하지 못한 내 삶이 다다른 곳은 라디오 앞이었다. 푸르른 빛은 언제나 내 방을 어둠 가득한 은하계에 빛나는 하나의 별처럼 비춰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주파수는 FM 101.1 하하의 영스트리트,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 박스로 이어지는 주파수의 흐림이 내 삶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그들은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팅커벨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사연을 쓰고 싶은 마음은 늘 굴뚝같았지만, 내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고 내가 날 사랑하지 못한 탓에 내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내 상황이 알려지는 것이 마치 모든 청취자들 앞에 알몸으로 벗겨진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나는 다른 이가 적어놓은 사연에 공감하며, 그들의 삶에 내 삶을 얹혀서 살아갔던 것이다.
그들의 한숨이 내 한숨이었으며, 그들의 웃음이 내 웃음이었다.
현시대는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것들이 판을 치는 시대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내 자신이 현재를 살고 있었다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아날로그적 감성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자극적인 매체보다는 평온하고, 잔잔한 이야기들이 날 채워 주었기에, 이제 것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오로지 혼자였기에. 혼자의 시간을 통해 나의 밑바닥을 볼 수 있었기에.
너무 많다 못해, 차고 넘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차라리 다 같이 부족하고, 다른 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잘 알지 못했던 그 시기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기에 글을 배웠으며, 그 시기에 내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이 세상의 자극에 취약한지 알았던 경험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시점에서 나의 삶의 여정은 다시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묵상>
'삶의 여정은 사람의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본의 아니게 다른 방향으로 삶의 방향이 설정될 때도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본인의 신념이 굳건하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믿음이 있다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