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차분한 마음이란.
화를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이의 무례한 언행에 초연 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픔을 참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이가 날 속이고 중간에 자신의 몫을 가져갔다고 그를 욕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프로젝트를 도와주었던 이가 내 것을 가로채고 그 공을 가져간 것에 대한 분을 참는 것도 아니다.
모두 아니다.
화가 나면 그 화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마음의 주체가 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의 생각과 행동에서 온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차분한 마음이다.
분을 통해 욕도 하고, 그 욕을 통해 내 마음에 점점 균열이 나더라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요. 온전한 내가 되어 자신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다시 봉합할 수 있는 마음이 차분한 마음이다.
내 마음이 요동치더라도.
그 요동치는 마음의 물결 속에서 마음의 배를 침몰시키지 않고.
내 안에 있는 마음의 배를 계속해서 떠 있게 하는 것이 차분한 마음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요동치는 마음의 물결은 그대로 두라.
그 대신 떠있는 마음의 배는 침몰시키지 마라.
<오늘의 묵상>
망상은 언제나 부재에서 시작된다. 결핍된 무엇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걱정으로 승화되어 우리의 신체와 생각을 잠식해버린다. 잠식당한 육체는 활동을 멈춘 뒤, 내면 깊은 심연으로 자신의 생각을 끌고 들어간다. 끌려들어 간 정신은 심연의 깊이에 놀라 발버둥 치지만 이미 늦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심연의 깊이는 조용히 이성의 정신을 삼킨다. 이성을 삼킨 부정의 정신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분노로 억울함으로 그리고 슬픔으로. 하지만 날 깨운 부정의 정신에 순응할 필요는 없다.
깨운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에 다시 집중해나가면 된다.
부정이라는 정신이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지 않게. 좀먹은 쌀부대만 새로 갈아 끼면 되지, 좀 먹은 부대에 안에 있는 제대로 된 쌀까지 모두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누굴 가르치려 쓰는 글이 아닙니다.
희귀병과 여러 자가면역 질환을 달고 살았던 청소년 시절.
그리고 여러 사건 사고로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시절.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었습니다.
하지만 고통만 가중된 위와 장만 얻게 되었고, 삶이 연명되었습니다.
내 더 강한 죽음의 방법도 있지요.
그러나 그 순간을 지나고 나니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 후 어떻게든 살아 내야 해서. 삶을 영위하며.
읽었던 책들과 그 후 15년간의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하게 된 실 생활의 일들을 조금씩 적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혹여, 좋지 않은 생각과 힘듦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언제든 메일 주세요.
우리 조금이라도 더 살아내 봅시다.
살아내 보면, 길이 보이고, 길이 보이면 삶이 연결됩니다.
죄송하게도 전 부자도 아니며, 실질적 도움도 드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쭙잖은 저의 짧은 글이.
어쭙잖게, 그대의 삶에 작은 실마리가 되길 진신으로 바라고 기도 합니다.
혹여 제가 글을 읽는 분의 삶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그 또한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默想_卯 金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