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공정을 위한 공리주의가 가능한가.
공정이란 단어가 현시대의 화두다.
하버드 교수가 정리한 공정과 폐지를 줍는 한 인간의 공정이 동일할까?
내 주변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폐지를 줍는 한 노인분이 계셨다.
그 노인은 동네에서 신뢰를 얻으며.
각 매장의 폐지와 원룸 안에 거주하는 거주인들이 문 앞에 빼놓은 빈 박스와 캔들을 수거해 갔다.
이 원룸에 새로이 이사 온 로스쿨 준비생이 있었다.
그 로스쿨 준비생은 로스쿨에 합격을 했는지.
자신의 문 앞에 두꺼운 책들을 노끈으로 묶어 내어 놓았다.
폐지를 줍는 노인은 늘 그가 해왔던 일을 아무 생각 없이 그날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 앞에 두꺼운 책들이 여러 묶음으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당연히 이것은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무거운 책들을 자신의 리어카에 실어 고물상에 팔았다.
(언제나 그래 왔다. 사람들이 버리는 것이라고 하며 문 밖에 빼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당연시 여겼던 일이 일어난 8시간 후에 일어났다.
그 로스쿨 준비생은 폐지를 주어 고물상에 파는 노인을 신고했다.
죄목은 절도죄*었다. 절도죄는 형법 제329조에 규정되어 있는 위반 행위이다.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행위에 적용되는 죄목이며, 이 죄를 저지른 사람은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적 처분을 받게 된다.
이 노인의 행동이 절도죄인가?
이 노인은 동네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폐지를 줍는 노인이며.
늘 자신이 해왔던 일이기에. 몸이 기억하는 그 일을 했던 것인데.
그 일이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노인은 폐지를 줍고, 주변의 더러운 청소도 도맡아 했다.
물론 이 주장이 로스쿨 학생의 행위가 잘못되었으며. 노인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로스쿨 준비 학생은 그 책들은 버리려고 빼놓은 것이 아닌, 집 안을 정리하면서 잠시 빼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책이 문 앞에 나온 기간은 3일 정도였다고 한다.
노인은 그것을 가져가도 되는 것인지 원룸 관리인에게 물어보았고.
그 관리인은 3일의 시간이 지났으니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관리인의 행위는 노인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노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상황이다.
그래, 3일 동안 청소와 함께 집안 정리를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상식선으로 그렇게 문 밖에 빼놓은 묶인 책들은 버리려고 빼놓은 것이 아녔을까?
추후에 그 사건에 대한 상황을 듣게 되었다.
동네에서 그 노인을 알고 지냈던, 한 건물의 회장님께서 자신의 법률팀을 대동해 법적인 대응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합의를 통해 그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얼마의 돈을 받고, 합의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 후 그 노인은 한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 노인은 과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과 회의감을 느껴 자신의 생을 한탄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상황을 도와준 한 은인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고, 감사한 삶고 계실까?
(흔히 절도라고 한다면, 내 소유의 물건이 아닌 것을 훔치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길에 떨어져 있는 돈과 신용카드 등 다른 이의 물건을 주워 이를 자신이 사용할 경우 이 행위 또한 경범죄의 절도로 취급될 수 있다고 한다. 주인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것이 자신의 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일을 절도라고 정의하기엔 노인이 행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상대의 물건을 임의로 훔쳐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묵상>
공리주의*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소수의 행복은 제안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
4명의 조난자가 생겨난다.
3명의 선원이 생존하기 위해 신일을 자행했던 미뇨넷호 사건 18일째 되자 17살의 선원이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시게 되는데 4명 중 선장이었던 한 사람이 옆에 있는 조수에게 17살의 선원 죽인 뒤 그의 시신을 먹자고 제안한다.
20일째 되는 날 17살의 소년의 목의 정맥을 칼로 찔러 버린다.
그 후 4일 동안 17살의 시체의 피와 살갗을 먹으며 생존하다.
한 명의 희생으로 3명의 목숨을 건졌다.
이것은 희생으로 보아야 하는가?
살인으로 보아야 하는가?
거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소수의 약한 인간이 일하다 병에 걸리고.
죽음을 선택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죽음을 통해 알리기 위해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그가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나약함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한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소수의 희생으로 보아야 하는가?
난 아직도 모르겠다.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
선택을 할 수도 없다.
도대체 세상에서의 도덕적 실리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영국의 도덕 철학자이자 법 개혁가인 제로니 벤담 공리주의 원칙을 만들었다. /인권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권은 애들의 수준의 생각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데 인간의 행복은 쾌락이 높고 고통이 낮은 상태이다. 이 행복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누릴 때 사회는 정의롭다고 정의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