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인간에 대하여
한 인간이 태어난다.
한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는 아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지켜가며 살아간다.
성별로 인해 한 인간은 두부류의 성으로 나눠지고.
나눠진 성은 여자와 남자로 지칭한다.
여자의 몸속에 잉태를 위해 한 생명력이 들어가 조화를 이룬다.
그 조화는 점점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변태 되어 간다.
포유류.
새끼를 몸 안에 지니고 다니는 생명체.
포유류는 자신의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동물을 지칭한다.
인간을 포함한 개, 고양이, 호랑이, 사자, 캥거루 등이 이 포유류에 속한다.
자신의 피와 영양분이 한 생명체에 전달되는 체계.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나의 새끼.
그 새끼들이 커가며, 성별에 따라 자꾸만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다.
이건 여자가 되었건, 남자가 되었건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지, 남자가 조금 더 물리적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태생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약간의 모순이 있지만.
하지만 우리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모든 상황을 보아왔을 때도.
남자가 조금 더 우월한 위치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조금 더 편안하게 표출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남자의 성폭력이 여성이 행한 성폭력보다 더 많다.
수치상으로 그것을 보아도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성별을 떠나 우리는 조금 더 모든 상황에서 여자를 더 보호해야 한다.
여기서의 보호는 감싸고, 지켜내기보다는 성별을 떠나 서로가 서로를 조금 더 동일 선상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위의 조합을 인간이라서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생명체로써 서로 다른 종족을 지켜 낼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게 지구 상에 인간이 인간답게 지구를 지켜가며, 조금 더 오래 축복된 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잉태와 함께 한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려 노력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멸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내 가며 살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늘의 묵상>
편협한 남성 우월주의는 여성의 고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여성의 위대함과 여성의 불리함을 우리가 모두 나눠 서로가 분담해야 한다.
이것은 페미니즘 또는 여성 우월주의가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신체 학적으로도 남성은 여성에 비해 대체로 이점이 많게 태어났다.
이러한 신체적 진화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단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이제 것 지켜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육체를 벗어난 영원에 깃든 삶의 숨결로 보면, 우리는 모두 다르지 않다.
모두가 동일하다.
생각의 차이가 영원의 무게를 가늠할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여성인 내 친구는 유산을 했다. 어렵게 시험관으로 가진 쌍둥이 두 명 중 한 명은 염증반응으로 태아 일 때 유산시켰으며, 나머지 한 아이는 18주 때 자궁이 열려 집 안에서 혼자 탯줄을 달고 있는 아이를 받아 내고, 신고를 했다고 한다.
남성인 내가 이 슬픔과 충격을 감히 글로 적고 있는 이유는 여성은 어쩌면 남자보다 더 강인하며.
남성인 우리가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감정적 일들을 이겨낼 수 있는 감정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 들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 영역 중 감당해 낼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감내할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외부적 환경을 통해 내게 주어진 일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과연 내 친구가 겪은 일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폭력을 당하고, 한 무리에서 섞이지 못해 왕따를 당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건 한 생명체의 죽음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내야 했던 그 상황을.
무슨 말로 표현하며 위로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