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그래도 살아냈다.
감정에 치우쳐지지 않았고.
오늘에 할 일을 모두 끝냈으며.
사람을 만나고, 웃으며 인사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버텨내며 살아내는 날이 많아지는 요즘.
눈물도 이젠 말라버렸다.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엄마, 아빠가 생각났다.
'그래 엄마의 뱃속에서는 그래도 엄마와 연결되어 있어지.'
지금도 엄마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난 참 엄마라는 단어가 이리도 슬프다.
아빠에게 맞아가며. 날 보호했으며.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날 먹여 살렸다.
아빠라는 단어는 나에게 머라고 해야 할까?
그냥, 마실 것 없이 먹는 고구마라고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지만 목으로 계속 꾸역, 꾸역 넘겨야 하는 그런 존재라고 해야 할까?
난 이렇게 하루를 살아냈지만.
반대로 누군가의 하루에 비수를 꽂은 것이기도 하다.
이건 잘 살아낸 것인가. 아니면 못 살아낸 것인가.
요즘 들어 나에게 하는 질문의 강도가 더 어렵고 수위가 높아진다.
가끔은, 살아야 하는가. 죽어야 하는 것인가로 전이되곤 한다.
<오늘의 묵상>
언어에 갇힌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세상적인 지식으로 진리를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느낌적인 것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 기쁨과 진리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라.
여기는 삶의 앎과 실천 감정의 통제가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편협한 시각으로 우리의 한계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모든 체계는 불가능에 초점이 맞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