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피해망상
"넌 피해망상이야 개새끼야!"
"시발 새끼야 내가 도와달라고 했어!"
"니가 해놓고 개지랄이야!"
"형 그래도 최소한으로 고맙단 소리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너한테 왜!", "넌 그래서 안돼 싹수없는 새끼야!"
"꺼져 개새끼야!"
"시발 새끼가 개지랄 떨고 있어!"
형의 사업 사기로 내가 부득이하게 어머니가 빌린 사채 빚과 변호사 선임비.
공사를 진행했던 업자들의 임금체불을 급하게 막아야 한다며, 총 35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난 뒤 6개월의 시간과 중간에 몇 차례 나도 힘들어 돈을 좀 줄 수 있겠냐고 형한테 부탁을 한 뒤 금일 나누었던 이야기다.
전화상으로 욕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 2021년 9월 27일 최종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약 15분간의 대화.
난 이렇게 피해망상 정신병을 쌍욕과 함께 얻게 되었다.
난 피해망상 환자다.
3년 전.
어머니의 사채 빚 1500만 원 아버지의 사채 빚 2000만 원가량을 갚고 난 뒤의 일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난 피해망상 환자다.
2013년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서울을 상경해서 형의 아는 친구에게 잘 못 투자해 500만 원가량의 투자금을 잃고.
역삼에 300만 원 / 75만 원의 집에서 3명이 비비고 살았다.
형의 친구와 형의 친구의 아는 부산 동생이 집을 나간 뒤.
온전한 75만 원의 월세를 혼자 부담해야 했다.
그로 인해 쉬운 사채를 당겨 쓰고, 그들의 수금 시스템을 직접 겪고 난 뒤.
난 사채의 무서움과 신용불량의 사회적 식물인간을 경험한 뒤.
돈의 두려움을 느꼈다.
솔직히 라면 1개로 주일 버티며, 라면 국물과 라면을 쪼개어 최소한의 영양공급으로 식사는 눈치 것 일하는 회사에서 최대한 배를 채우는 방법을 채득 한 상태로 살아보니.
신변의 두려움과 정식적 육체적 고통도 동시에 느꼈다.
나는 피해망상 환자다.
그렇게 2년을 죽기 살기로 월 180만 원을 벌고, 고용보험비용을 제외한 약 168만 원의 돈으로 150만 원으로 사채와 카드 연체료를 대환대출로 갚은 뒤 집을 나오려고 했다.
근데, 300만 원의 보증금은 그 전 주인이 월세를 연체하여 이미 공준 분해됐다는 이야기를 원룸 건물주에게 들었다. 분명 내가 건네받았던 계약서 계약으로는 계약기간 만료 후 보증금 300만 원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 난 피해망상 환자다.
난 공정한 사회와 가정 속에서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합리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이었으며, 35년이라는 시간이 모두가 동등하게 주워진 공평한 운동장에서 똑같은 출발 소리를 듣고 출발했지만.
내 능력이 부족하여 지금도 2억의 부채와 부채의 이자를 갚고 있는 살기 좋은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피해망상 환자다.
<오늘의 묵상>
심연이 어두운 것은 빛이 들어오지 못할 만큼 깊이가 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감정의 깊이가 깊을수록 행복과 행운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연은 두려움의 시작이다. 바닷가에서의 모래알 위가 그토록 여유롭고, 평화롭게 보이는 것은 빛을 온전히 받아내고 그 빛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수용은 온전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내적 합리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에서 나오는 편협한 생각들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히지 않아야 한다.
이겨낼 수 있는 고난과 인내의 범위는 각자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남이 힘들다고 내가 힘든 것도, 내가 힘들다고 남이 힘든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내야 할 인생이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