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오징어들의 게임이라고 하기엔.
많은 것이 같은 이들. 외모보다 중요한 삶의 이유(理由 : 구실이나 변명)
서로의 입장과 자신이 처한 환경만 중요했다.
남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자신의 생존과 결합되며.
분노의 감정보다 더 무서운 생존의 이유(怡愉 : 명사 즐겁고 기쁨)
인간의 개입을 무시하려 노력하는 사람들.
자신의 모습을 숨겨가며, 가진 것보다 없어 보이려 노력하는 이들.
검소함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악이용 하는 사람들.
내가 살아가야 할 명분을 위한 살인이 자행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대의를 위한 변명과 명문의 프레임을 씌워 권력과 이권의 최고층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권력의 이행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자신의 명줄을 지키고자 목소리와 손가락으로 시민의 목숨을 볼모로 잡는다.
상황의 보고와 충복들의 보호 아래 핵미사일의 빨간색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의심과 외부세력들의 외압을 이겨내려 두려움을 자신의 명분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사탕발림에 가득한 목소리에 집중한다.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
자신의 신념과 생존이 흔들리기에.
이 게임을 끝낼 수 있는 것은 타협이 아닌.
이념의 존속과 보존 자신의 이야기에 호응할 수 있는
시민의 시야를 가릴 수 있는 프레임이다.
이권과 자신의 욕망으로 쌓아 올린 탐욕의 늑대에 계속해서 먹이를 줘야 한다.
굶어 죽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차라리 사살되는 것이 났다.
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해서도 안된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뒤를 이어 신격화 (神格化 : 어떤 대상을 신의 자격을 가진 것으로 만듦.)
사상과 자신의 발자취를 누군가는 계승하거나 그것으로 사람을 선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외로운 늑대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삶에 취해버린 식욕이 왕성한 돼지나 다름없다.
가축을 비하 (卑下 : 업신여겨 낮춤.) 하는 것이 아니다.
가축 (家畜 : 집에서 기르는 짐승. 소, 말, 돼지, 닭, 개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무리를 지어 자신의 삶과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보다 힘이 센 야생의 동물을 길들인 짐승.
인간이라 불리는 종족.
본모습과 타인에게 비치는 것과의 괴리감에서 자신의 이득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에게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오징어라 부른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 상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다고 넋 놓고 있기에는 세상은 그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455명의 목숨이 모두 사라지고.
그들 사이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생존을 이어가는 상황이라.
과연 456번은 행복했을까?
무엇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에 무엇을 계속 채우려 하는 인생.
비워야 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기에.
탐하고 욕망하며 남의 시선에 놓인 나의 피사체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연 없는 인생 없다고 말한다.
자의 반, 타의 반 우리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기도.
한편으로는 빼앗으며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이 그토록 힘든 것은 내가 빼앗지 않으면,
남이 빼앗아 가는 오징어 게임 같은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