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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NEST RABBIT Sep 16. 2022

삶을 돌아간다는 것.

네 번째 이야기. 삶을 돌아간다는 것. 


삶을 돌아간다는 것.




나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는 이 밤의 고독은 

언제나 그렇듯 헤어짐을 이야기한다. 떠나보낸 것들의 편린들 중 내가 움켜 잡을 수 있는 것은 슬픔에 젖은 베개뿐 하나의 베개를 버려내고 돌아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짙은 어둠 속 수놓은 별빛이 나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나는 그 별의 속삭임의 끊김이 아쉬워 쉼 없이 걷는다.



끝도 없는 어둠을 그렇게 걷는다.


걷다 보니 너를 잊었다.



너를 어둠에 묻었다.


어둠이 더 검게 변했다.



별은 더 밝아졌다.

그렇게 너는 별이 되었다.





너를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었다.




작지만 단단하고, 가늘지만 오래가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러니, 쉬이 지치지도 않는다. 


세상 것들에 가볍게 휩쓸리지 않는 강단 있는 것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웬만한 자극에 자신의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 


연약해 보이는데, 내면이 단단한 사람. 


처음에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아도. 

꾸준히 자신의 연약함과 나약함 그리고 부족함을 채워가는 삶. 

한 가지 일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비록, 최선을 다한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냥 그것으로 만족한다. 


만족이라는 것.

모든 게 완벽하게 이뤄져 인정을 받는다는 것보다. 

자신의 시선으로 과정에서 노력의 결과의 합을 자신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시선이 머무는 곳에 고통이 있게 하라. 

그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낳아.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나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삶을 짧은 호흡으로만 대처하다가는. 

뭍 밖을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대다 끝내 죽을 것이다. 

가물치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을 대비해, 진흙과 흙에서 사는 호흡법을 배운다. 

그것이 삶의 지혜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 거할 줄도. 최상의 상황에 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거(居)한다는 것. 사람이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산다는 것이다.

머물 줄 알아야 한다. 


좋은 것에서도. 좋지 않은 것에서도 머물 줄 아는 기술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 

의외로 쉽게 꺾이는 사람은 강단 있고, 단단한 사람이다. 


갈대를 보라, 그 모진 풍파에 잠시 누워 있다.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일어난다. 

하지만 태풍에 풀어지고, 찢긴 가로수를 보라. 


갈대의 두께보다 단단하고, 튼튼하며, 두꺼움에도 바람을 이기려 버티니 쉽게 부러진다. 


버티는 것도 좋은 능력이지만. 

상황에 따라 세상 풍파에 몸을 싣는 것도 좋은 능력이다. 

흐느끼고, 흩날려 약하다 하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난다. 

엎드려 있을 때 충분히 슬픔을 쏟아낸다. 

비 오는 날 세차게 부는 바람에 고이 엎드려 있는다. 


그리고 햇 볕이 비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햇살에 자신의 얼굴을 들어 올린다. 

다시 설 수 있는 힘은 결국, 삶을 다시 살게 한다. 


언제나, 삶에서 부침은 날 주저앉게 했다. 

주저앉아 있다 일어나는 힘에서 난 단련되었다. 


그 단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지랄 총량의 법칙과 행복총량의 법칙 존재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고, 또 언제나 나쁠 수 만 없다는 것이다. 


삶의 총합은 언제나 비례한다. 

하지만 좋고 나쁨은 비례하지 않는다. 

공평하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는 것이 어렵다. 늘. 

분명, 더 좋은 일이 나에게 혹은 더 좋은 결과가 나에게 있어야 했는데.  


위와 같은 말들로 단정 짓기에는 인생의 일들은 복잡계의 영역이다. 


하얀 백조들이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지만. 

발은 언제나 버둥치고 있다. 

그 발 버둥은 검은 백조도 마찬가지다.


편(偏:치우칠 편)을 나누고 서로의 영역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욕구를 채우는 사람들. 

치우쳐진 편중된 마음의 기울기는 행위와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그 사람을 겪어 보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그 사람의 인간성과 성향이 결정된다. 


결정 비수의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박힌 화살은 뽑지 못하게 화살의 촉을 잘라 버린다. 

박힌 파편은 갈기갈기 찢겨 마음 이곳저곳을 유형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내 삶을 괴롭힌다. 

화살을 뽑아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이라도 했으면. 덜 아프고, 시간이 지나 아물 텐데. 


치유되지 않은 화살의 파편들은 종잡을 수 없이 내 마음을 언제고 들 쑤신다. 

그래서 오늘도 아프다. 마음이. 





고통과 인내가 같게 느껴지는 순간에 아픔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아픔으로 고통과 인내를 모두 감싸버리고 싶지만. 고통과 인내의 가시는 시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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