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와타사와

114명.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에 남아 있던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주로 군인과 경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텨왔던 자들. 그들이 호주 캔버라행 배에 지친 몸을 실었다. 그 배가 부두를 떠나는 순간, 투발루는 완전히 비어버렸다.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니, 남을 수 없었다.


2036년.

지구는 여전히 둥글었고, 시간은 여전히 흘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있었다.


하늘은 일 년 내내 회색이었다. 하루가 저물면 조금 더 짙은 회색으로 변했고, 해가 뜨면 연한 회색으로 옅어졌다. 날씨가 맑다거나 비가 온다는 표현은 이미 오래전 옛말이 되었다. 한때 하늘을 찬양하던 시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이제 빗물은 어딘지 모르게 금속 같은 냄새를 풍겼다. 그 물이 스며든 땅은 기름을 뒤집어쓴 것처럼 반짝였다. 도시의 대기는, 차라리 연기처럼 진득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낯선 행성에서 온 방문자처럼. 아침마다 어딘가에 울리는 경보가 사람들을 일깨웠다. "오늘도 폭염 경보를 발령합니다. 실외 활동을 삼가십시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듣는다 해도 그 말에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했다. 더운 날엔 땀을 흘릴 수밖에 없고, 공기가 나쁘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쯤은 당연했으니까.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은 날마다 흘러나왔다.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8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세상은 그 숫자의 상승에 맞춰서 변해갔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한때 눈부신 자태를 뽐냈지만, 이제 그 절반이 물에 잠겼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거리를 걸을 수 없었다. 지하철은 흙탕물에 잠겼고, 고층 빌딩의 1층은 폐허처럼 어둠과 습기에 잠겼다. 사람들은 고지대로 밀려났고, 물이 찬 도시를 바라보며 산다. 배를 타고 옥상에서 옥상으로 이동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뉴욕은 이제 더 이상 뉴욕이 아니었다.


인도에서는 가뭄이 온 대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강의 수위는 최저치를 기록했고, 땅은 갈라졌다. 곳곳에서 갈라진 대지 틈새로 더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농작물은 말라죽어갔고, 사람들은 저수지를 바라보며 희망 대신 절망을 길렀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곳의 비는 이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그렇게 변해버린 몬순에 사람들은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그저, 가뭄이라고만 부를 뿐이었다.


지구의 해수면은 매년 3.7mm씩 높아져 이제 총 20cm가 더해졌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의 육지 5분의 1이 물에 잠겼다. 그곳에 살던 1,800만 명이 갈 곳을 잃었다. 파도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삼키고,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리듯 도망쳤다. 그리고 그들을 수용하기 위한 막사는 언제나 부족했다. 살 곳이 없으면 사람들은 사라지는가? 아니다. 사람들은 떠돈다. 고단하고 비좁은 막사 속에서. 서로의 체온과 냄새를 느끼며, 내일을 향해 길게 늘어선 줄을 지켜보며. 그 줄은 점점 길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폭염이 휩쓸고 간 북미와 유럽의 숲은 거대한 재가 되었다. 바람은 그 재를 쓸어내렸다. 재는 바람을 타고 이웃 도시까지 날아가 길바닥에 내려앉았다. 마치 잿더미가 온 도시를 감싸는 듯했다. 그 재가 내릴 때마다 사람들은 흩날리는 눈처럼 그것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나 쓸어낼 때마다 재는 더 가볍게, 더 높이 날아올랐다. 이곳에서 산림은 빠르게 사라졌고, 공기 중의 산소는 점점 옅어졌다. 숨을 깊게 들이쉬는 행위는 이제 위험한 일이 되었다.


"환자 두 명 더! 산소호흡기를 준비해!"

병원에는 숨 쉴 힘조차 잃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침상은 언제나 부족했고, 그나마 빈자리가 있으면 금세 채워졌다. 병원 복도에 쭉 늘어선 환자들의 얼굴은 노랗게 바래고, 땀에 젖어 있었다. 땀과 피로가 어우러진 냄새가 병원에 가득했다. 대기 오염, 식량 부족, 수질 오염… 무엇 하나 그들을 그냥 살게 두지 않았다. 도시 밖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희망을 찾고 있었다.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희망의 이름이 바로 ‘노바(Nova)’였다.


노바는 몇 년 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아 몇 개의 대기업과 연구소가 협력해 만든 최신의 AI 시스템이다. 노바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기후 데이터와 이상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오늘은 노바가 다시 움직이는 날이었다.

중남미의 한 마을. 몇 달 동안 가뭄과 폭염이 이어졌고,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가 그곳의 삶을 잠식했다. 농부들은 생존의 기로에 섰다. 그리고 그들을 덮친 화재.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은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사람들은 급히 대피했지만, 모든 것이 제멋대로였다. 대피소가 부족했고, 물과 식량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 노바가 개입했다.

"현재 상황을 통제합니다. 노바가 대응을 시작합니다."

노바의 오더와 함께, 수십 대의 드론이 공중에서 몰려왔다. 그것은 순식간에 하늘을 그물망처럼 가로질렀다. 드론들은 소화제를 뿌리며, 불길을 향해 뚫고 나갔다. 다른 드론들은 화재가 번지는 경계를 따라 방화선을 구축하고, 나무를 제거했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이성을 잃은 듯 폭주하는 듯했다. 드론들의 소리는 윙윙거리는 벌 떼 같았고, 그 주변을 휘감는 연기는 거대한 파도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행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지상에 내려앉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 기적은 어딘가 차갑고 메마른 느낌이었다. 몇 시간 후, 드론들은 하나둘 하늘로 떠올라 사라졌다. 노바의 메시지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위험 상황 통제 완료. 안전을 위해 대기하십시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할 말을 잃은 채. 노바는 그들을 구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받았다는 실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차가운 목소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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