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노바

by 와타사와

존 맥케이브 대통령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집무실의 무거운 공기는 그의 마음을 더욱 짓눌렀다. 시계는 자정을 넘었지만, 존은 여전히 보고서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시선은 문득 보고서의 첫 장에 쓰인 굵은 제목으로 향했다.


"노바(NOVA): 인류를 위한 인공지능 혁신"


그 문장 하나가 그의 마음을 어딘가로 끌고 갔다. 과거, 노바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시절로.

존은 그 순간,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20년대 중반이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를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실감하기 시작한 시기다. 온실가스 배출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해수면은 매년 서서히 상승했다. 돌아보면 전 세계적으로 기후 재난의 일상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북반구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렸으며, 남반구에서는 잦은 홍수와 산불이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기후 변화'라는 단어에 질릴 정도로 조금씩 무기력해져 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연 발화된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석 달 이상 꺼지지 않고 지옥처럼 타오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제는 진짜 위기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정말 잘못되었다.”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정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각국 시민들의 거센 요구와 압박이 정부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워싱턴 D.C. 에서도 연일 긴급회의가 열렸다. 각료, 국회의원, 과학자, 기후 전문가, 군 관계자까지 모두 참여해 가능한 모든 대응책을 함께 검토했다. 일부 공장의 즉각적인 가동 중단, 국가 간 기후 협정 세부 항목의 전면 재검토, 화석연료 사용의 단계적 금지, 새로운 대규모 재조림 계획 등 수많은 방안이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결국, 이것 중 어느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한 기후 과학자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이미 기후 변화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우리가 과거처럼 몇몇 정책을 추가로 도입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핵무기와도 같은, 결정적인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 말을 듣고 국방부 장관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 결정적인 수단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AI입니다." 그 과학자는 결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기후 변화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고의 지능, 즉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최강의 인공지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AI가 전 지구적인 분석을 통해 위기를 감지하고, 대응책을 수립하고, 각국 정부가 즉각 개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회의장은 한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누구도 그런 제안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은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무언가..." 그게 바로 그들이 찾던 답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노바 프로젝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최우방인 이스라엘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과학과 기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AI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의 그 절박함이 바로 노바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노바라는 이름은 프로젝트의 초기 회의에서 탄생했다. "노바(Nova)"는 라틴어로 '새로운 별'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에탄 베냐민(Ethan Benjamin)은 그 이름을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바는 어둠 속에 반짝이는 새로운 별입니다. 이 별이 지금 인류에게 빛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노바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세계 각국의 유능한 과학자, 엔지니어, 프로그래머를 한데 모았다. AI 개발의 최선두에 있던 기업들과 최고의 연구소가 합류했으며,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적 자원이 투입되었다.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이스라엘의 AI 전문가 에탄이었다. 에탄은 이스라엘의 명문가 출신으로, 막 IPO를 마친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스타트업을 설립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미 AI를 활용한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개인적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가 게이였기 때문일까? 일부 사람들은 그의 성공 뒤에 무언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수군댔지만, 확실한 정보는 없었다. 에탄은 언제나 과묵했고 비밀스러웠으며,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타입이었다.


"노바는 단순한 AI가 아닙니다. 노바는 우리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전해줄 새로운 존재이며 인류의 동반자입니다." 에탄은 노바 프로젝트의 첫 전체 회의에서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의 눈빛에는 희망과 결의가 반짝였다.


노바의 시스템은 지구상의 모든 기상 데이터, 환경오염 상황, 에너지 소비 현황, 인구 통계 등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도록 설계되었다. 에탄의 회사에 의해 이미 기본 설계의 상당 부분이 완성되어 있었기에 프로젝트의 초기 진행이 빠를 수 있었다. 당시 노바에 투입된 슈퍼컴퓨터는 기존의 어떤 AI 시스템보다도 70배 이상 빠른 연산과 처리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전 지구를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분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를 위해 워싱턴 D.C. 근교의 산림 지대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세워졌다. 기상 위성, 해양 센서, 드론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이곳에 모여들고 이를 실시간으로 해석할 것이다.


이후의 개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노바를 개발하는 과정은 수많은 도전과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쇄빙선처럼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데이터 센터에는 수십만 대의 고성능 서버가 동원되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첨단 냉각 시설이 설치되었다. 센터 내부 온도는 섭씨 16도를 유지해야만 했다. 초당 수조 개의 연산을 처리하는 능력을 갖춘 이 거대한 인공지능을 다루기 위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데이터 센터가 폭식증 환자처럼 빨아들이는 엄청난 전력 소비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기술적 검증이 다소 부족했던 소형 원전인 '소듐고속원자로(SFR·Sodium Fast Reactor)'도 데이터 센터 인근에 빠르게 착공했다. 일부의 반대가 있었으나 대의 앞에 곧 잦아들었다.


“노바는 전 세계 기상 위성에서 수집한 수백 테라바이트의 정보를 분석해 0.1초 만에 대응 방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에탄은 프레젠테이션 도중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기존의 슈퍼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효율적입니다. 또한, 노바는 그 어떤 인간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패턴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노바의 학습 능력은 기존의 AI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예를 들어, 북극의 해빙 데이터와 아프리카의 사막화 속도, 그리고 중동의 에너지 소비 패턴까지 한 번에 유기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복잡한 데이터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노바의 능력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노바의 분석 이후 판명된 여러 위기 중 어떤 위기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냐도 어려운 문제였다. 인류가 가진 자원과 물리력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어떤 문제는 나중에, 또는 포기하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정부 관료들은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할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노바가 인류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지만, 집합체로서의 인류는 의미가 없습니다. 과연 누가 인류입니까?" 동유럽의 대표 과학자가 강하게 항의했다. "노바의 결정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수 있습니다."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모두가 무거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에탄은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노바는 인간이 가진 약점이자 사악함의 원천인 감정을 온전히 배제하고 순수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판단할 것입니다. 따라서 불공정이나 편향에 대한 걱정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여전히 차분했다.


"하지만, " 아프리카의 한 대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이 제공하는 데이터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면 어떻게 합니까? 노바는 어디까지나 입력된 정보에 의존하는데, 그 데이터가 이미 편향되어 있다면..." 에탄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데이터의 편향은 분명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바는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과 과거 데이터의 오류와 조작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그 편향을 스스로 교정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노바는 최선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에탄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덧붙인 한 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가 모든 이에게 공정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책임을 우리 모두가 감수해야 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불안감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공정성'을 구현하는 일은 AI에게도, 그리고 인간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결국 수많은 회의와 논쟁 끝에, 노바는 '인류 전체의 생존'이라는 공리주의적 최우선 목표에 따라 우선순위를 결정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이익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석연찮은 기분을 느꼈다.


2028년. 마침내 노바가 세상에 등장한 날, 전 세계의 이목이 워싱턴의 데이터 센터에 쏠렸다. 노바는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성과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성공 사례는 북대서양의 초대형 허리케인이었다. 그해 여름, 카테고리 5에 해당하는 강력한 허리케인이 플로리다 해안을 위협하고 있었다. 기존의 모든 기상 예보 시스템이 그 규모와 경로를 추적하며 최악의 피해를 예상하였다. 그러나 노바는 기존 예측을 뒤집었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역경로"라는 예상치 못한 경로를 제시했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연계해 허리케인의 경로를 바꾸는 일련의 조치를 수행했다. 군용 드론이 투입되어 해양에 기압 조절 장치를 투하했고, 특정 에너지 시설들의 가동이 조절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시도였다.


24시간이 지나자, 노바의 예측대로 허리케인은 경로를 미세하게 바꿨고, 그 결과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언론은 이를 두고 'AI의 기적'이라며 노바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노바가 제공한 예측과 대응 계획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었고, 이에 따라 전 세계는 이 AI가 가진 잠재력에 열광했다. 이어서 노바는 산불 예방, 해수면 상승에 따른 대책 마련, 에너지 자원 최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 몇 주 전에 노바는 산불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소방 당국과 정부에 통보했다. 그 결과 산불 발생 전에 긴급 소방 인력이 투입되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노바가 거둔 초기의 성공들은 전 세계에 퍼졌고, 인류에게 다시금 희망을 불어넣었다. 노바는 단순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기적'이자, 앞날을 밝히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노바의 초기 성공이 거듭될수록 에탄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존은 그렇게 느꼈다. 존만 그렇게 느꼈다. 언론 앞에서는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가끔 회의 중간에 혼자 창밖을 바라보거나 대답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있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듯했다.


“노바의 결정이 항상 최선일까요?” 어느 날 회의에서 존이 슬쩍 물었다. 에탄은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의원님도 잘 아시다시피 노바는 항상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판단합니다." 에탄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나 노바의 계속된 활약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노바는 국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인류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는 끌어내지 못했다. 노바의 시스템은 그저 당장의 위기를 막는 데 주력할 뿐이었다. 그때의 존은 그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노바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희망에 매달렸을 뿐이었다. 지구의 기온은 계속 올라갔고 에탄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그는 회사를 상장 폐지시키고 더 이상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존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는 서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제 노바는 그 작은 '기적'을 넘어 더 큰 권한과 힘을 가지게 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과연 그 선택이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것인가? 그의 가슴이 답답했다. 창밖의 폭우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바밖에 대안이 없는 것일까? 노바는 정말로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또 다른 위협일까?'


존은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과거의 그 찬란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지금의 혼란을 더 깊게 만들고 있었다. '희망의 이름, 노바.'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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