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존 맥케이브

by 와타사와

존 맥케이브(John McCabe).

존은 민주당 소속의 미국 제49대 대통령이다. 그는 첫 4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섰고, 재선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공화당은 그가 도대체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냐며 연일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말 바쁘고 고통스러운 3년이었다. ‘그런데 정말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물론 역대 대통령 중 파란만장하지 않은 이력을 가진 인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존은 태어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입양되었다. 지금까지도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들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가 유명해진 후 그의 생모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그는 그 진위를 확인해 보지도, 그들을 만나보지도 않았다.


다른 입양아 두 명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원대하고 다소 추상적인 꿈을 향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노력해 왔다. 그는 늘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업과 야구에 두각을 드러냈고, 지역 사회의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강하기보다는 단단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양부모 두 사람 모두 공립학교 교사였고, 그들은 아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올바른 행동과 꾸준한 실천이라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올바른 행동과 꾸준한 실천... 존은 그 가르침을 고스란히 자기 삶에 적용했다. 매우 고지식하고 도덕적이며 성실한 인물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시속 155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서부 고교 최고의 투수 유망주였고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입생 때 받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다시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대부분이 1년 정도의 재활을 거치고 복귀하는, 이제는 일반적인 부상과 수술이었지만 그는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좌절했지만 곧바로 학업에 몰두했다. 대학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했고, 이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기후 변화와 환경 이슈에 깊이 관여했다. 원래 노동 문제와 특히 멕시코 불법 이민자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그가 처음 입사한 로펌은 그에게 환경 분야를 담당하도록 했다. 그는 그저 소명이라 생각하며 사건에 몰두했다. 변호사로서 그는 주로 환경 관련 소송에 참여하며 대기업의 환경 파괴에 맞섰다. 세계 최대의 석유 기업을 상대로 해양 오염 관련 소송을 대리하며 끝내 패소했지만, 법정에서 그가 했던 발언들과 그가 눈물을 흘린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갔고 기사화되었다. 배우 같은 그의 수려한 용모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더해지며 그는 조금씩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활동은 정치권으로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진솔함과 강인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곧 의원으로 당선되어 연방 하원의 일원이 되었다.


정치계에 발을 들인 이후에도 그의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었다. 그는 수년 동안 기후 변화를 막기 위 법안들을 발의하고, 각국 정부와 협력하며 외교 정책을 이끌었다. 왜 그가 그렇게 기후 문제에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끈질긴 투사라 불렀다. 한편에서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모범생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기후 변화의 심화와 함께 그는 점점 거물이 되었다.


그리고 2032년 대선. 존 맥케이브는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개발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는 지구를 살릴 마지막 희망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그의 취임 연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그는 수많은 국가와 협력하며 강력한 환경 정책을 펼쳤고, 각종 기후 협약을 체결하며 변화를 이끌려고 노력했다. 그는 늘 진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은 그에게 더 가혹한 선택을 강요했다.


2036년 오늘,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은 2036년의 뉴욕 날씨만큼이나 어둡고 답답했다.

날씨는 끊임없이 회색빛이었다. 온종일 흐리고 차갑다가, 또 어느 날은 갑자기 푹푹 찌는 더위가 찾아왔다. 올해도 폭염과 폭설이 같은 달에 번갈아 찾아왔다. 대통령은 긴 회의 탁자에 앉아 창밖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곳엔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자신만큼이나 무거운 구름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대통령님, 준비되었습니다.”

비서관의 목소리에 대통령은 고개를 돌렸다. 책상 앞에는 수십 개의 보고서와 자료들이 쌓여 있었지만, 그의 눈은 그 서류 위의 글자보다 더 어두웠다. 오늘은 기후 변화에 대한 비상 회의였다. ‘투발루의 멸망’ 이후 대중들은 국가가 무엇인가를 하기를, 서둘러 이 상황을 타개하기를, 본인들의 생존을 보장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요구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국방, 환경, 에너지 등 각 부처의 장관들과 미국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누구 하나 희망을 품은 기색이 없었다.


대통령은 침을 삼키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여러분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제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짙은 남색 정장과 유난히 목을 조이는 넥타이가 계속 눈에 거슬리는 기후특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도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각종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8도 상승했습니다.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온난화로 인한 자가 증폭 효과입니다.” 그는 곧장 손에 든 태블릿을 조작해 화면을 띄웠다. “보시는 것처럼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고 있습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화면에는 붉게 물든 지구가 돌고 있었다. 북극의 넓은 영역이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지구의 심장마비’라고 불렀다. 지구의 자생 시스템이 마비되어 생태계 전체가 기능을 잃어가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영상은 지난 몇 달 동안 수도 없이 보아 온 것이었다. 그러나 매번 그것이 지닌 무게에 짓눌렸고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이 그를 더욱 절망하게 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위험한 상황입니까?” 대통령은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사실 돌아올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 과학자가 나섰다.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듯하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확한 데이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과학자는 자신의 서류를 펼치며 손가락으로 한 항목을 가리켰다. “해수면은 이미 매년 3.7mm씩 상승하고 있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최소 2억 명 이상의 인구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기후 난민이 되었습니다. 그 숫자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예정입니다.”

과학자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 한때 인류는 지구를 정복한 주인이었다. 기술과 문명으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의 복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까?" 대통령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역시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농무부 장관이 나섰다. “지금 상황에서는 식량 생산량이 매년 10~2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미 주요 곡물의 가격이 평균 300% 이상 폭등했고, 저소득 국가에서는 식량 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다른 국가에도 곧 절대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아직 버텨내고는 있으나 조만간 미국에서도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올해 중서부 지역의 옥수수 수확량이 50% 이상 감소했습니다.”


실내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이윽고 국방부 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안보 상황이 매우 불안정합니다. 국경을 넘는 기후 난민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분쟁과 테러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 추세면 물, 식량 그리고 살 수 있는 땅을 둘러싼 전쟁이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겁니다."


대통령은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방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이 내놓은 데이터와 예측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함께 노력했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수백 개의 기후 협약을 체결했고, 산업계는 친환경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사방이 어둠으로 둘러싸인 터널 속에서 그들이 가진 빛은 점점 약해져 갔다.


"그렇다면 대안은?" 대통령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들 숨을 삼키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 순간, 농무부 장관 옆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통령님...”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오늘 당장 제로로 줄인다 해도 이미 우리가 놓친 임계점을 되돌리기엔 늦었습니다.”


대통령은 눈을 감았다. 모두가 예감하고 있었지만, 직접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몸서리쳤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입니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답지 않은 말투였다. 그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방법의 하나는...”

그는 잠시 망설였다. 방 안의 모든 이가 그의 다음 말을 주시했다.


"노바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한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노바. 그 이름이 등장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노바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인류를 돕고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학자는 설명을 이어갔다. “노바는 현재 지구 전역의 기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데이터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바를 진정한 ‘의사 결정자’로 만드는 겁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환경 관련 의사 결정을 노바에게 맡기고, 인류가 그 판단을 조건 없이 따르는 것입니다.”


노바는 이미 전 세계의 기후, 자원, 인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 D.C. 근교에 위치한 초대형 데이터 센터에 설치된 이 시스템은 수십만 대의 서버를 통해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며, 각종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바는 어디까지나 한정적인 '조언자'일 뿐이었다. 방 안이 싸늘해졌다. 대통령은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노바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초지능 AI가 대신 해결하게 하자는, 어찌 보면 광기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정확히 어떤 권한을 의미하는 겁니까?" 대통령이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그는 눈길을 아래로 향한 채,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을.”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어딘가 슬픈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노바는 지금까지 우리가 허용한 영역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제약을 벗어나야 합니다. 노바가 세계 각국의 에너지 사용, 식량 생산, 인구 이동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는 화면을 조작해 새로운 그래프를 띄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톤의 식량이 부패하고 있고, 매일 수백만 리터의 물이 잘못된 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노바가 실시간으로 자원을 분배하고, 전 세계의 에너지 사용을 조정하고, 심지어 인구의 이동과 식량 소비 패턴까지 통제할 수 있다면..." "즉,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이군요.” 국방부 장관이 거칠게 끼어들었다. "노바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게 답이라면, 우리는 그저 통제받는 존재가 될 뿐입니다. 국가의 주권도, 개인의 자유도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노바는 우리가 꿈꿨던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와는 다른, 효율과 생존만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체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말을 멈추고 화면에 떠오른 지구의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만약 노바가 실수한다면요?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습니까?” 대통령이 날카롭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앞으로 10년도 채 버틸 수 없습니다. 노바를 업그레이드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점차 예정된 파국으로 빠져들 겁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것은 선택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한 과학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노바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선택권과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잃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앉은 의자는 마치 지구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의 시야는 흐릿해져 있었고, 가슴속에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솟구쳤다. 노바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말은 그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온 이상, 정책, 그리고 정치인의 책임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리라.


'노바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긴다.' 그 말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자신에게 계속 질문했다. '그동안 인간의 노력은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가진 지혜와 기술, 그리고 결단력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고, 회색빛의 도시가 그 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이 선택이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눈앞에 놓인 모든 데이터, 통계, 그리고 지금 그의 귀에 들려오는 말들이 그에게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인간의 실패를 인정하고, 기계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그는 재선을 앞두고 있었고, 계속 상대에게 열세를 보이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항하는 투사로서의 그의 이미지는 이미 오래전에 희석되었고, 많은 유권자가 그를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다.


“저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대통령은 고개를 들어 각료들과 과학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아져 있었다. 그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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