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첫 출근날의 설렘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어렵게 들어간 스타트업에서 저는 마케터였고, 성장을 믿었습니다.
신제품 프로모션을 준비하며 밤새 PPT를 붙들었던 초반 2~3년은 정말 눈이 반짝였죠. 작은 캠페인이 바이럴에 성공할 때면, 세상이 제 아이디어에 반응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GA 대시보드를 열어 보는 일이 자랑이었고, 카피 한 줄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이 프로젝트 일정으로만 채워져 있더군요.
성과 발표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런칭 준비, 레포트, 광고 예산 조정...
성장과 성취 사이에서 살았던 그때 저는, 사실 ‘지속되는 긴장’ 위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점점 얼굴에 피곤이 스며들었고, 주말에도 머릿속엔 KPI가 떠다녔습니다.
스물아홉 겨울, 오랜만에 집 거울을 마주한 순간이 기억납니다.
화장도 안 한 얼굴, 퀭한 눈, 지쳐 있는 어깨.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5년, 10년 더 살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 질문이 곧 답이더군요.
늘 마음 속 한켠에 숨겨둔 꿈, ‘살아보는 여행’을 꺼냈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한 번쯤은 모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관광객이 아닌 ‘거주자’로, 나라를 건너며 삶을 기록하는 여행.
회사 메일함의 “사직서 제출” 버튼을 누를 때 손이 떨렸습니다.
무서웠지만, 이상하게 숨이 깊게 쉬어졌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창문을 활짝 연 기분이었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볼까.”
그 말 하나만 붙잡고, 저는 익숙한 세계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제 시간은 회사 일정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루틴으로 채워집니다.
베트남의 골목 카페에서 글을 쓰고,
치앙마이의 명상센터에서 호흡을 배우고,
멜버른의 공원 벤치에서 따뜻한 햇빛을 맞으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회사에서 배웠던 책임감, 일정 관리, 데이터 분석은
여행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핵심은 역할이 아니라 태도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회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마음 속에 오래 머문 꿈이 있다면
한 번쯤 꺼내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저
“언젠가”를 “지금”으로 만든 사람이 되었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지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금은 낯설고, 그래서 더 선명한 삶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