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잠시 늦추는 순간,
세상은 갑자기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나가고,
차들은 리듬을 잃지 않은 채 움직이지만
나는 그 속도에서 한 발 물러나
내 호흡이 닿는 거리만큼 움직인다.
느리게 걷는다는 건 단순히 속도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그건 삶을 한 걸음의 크기로 되돌리는 행위다.
멈추지 않고도 멈춰 있는 시간
빠르게 걷는 동안엔
길이 목적지에 종속된다.
도착해야 할 곳이 있고,
맞춰야 할 일정이 있다.
하지만 느리게 걷기 시작하면
도착이 목표가 아니게 된다.
걷고 있는 지금,
내 발 아래 있는 곳이
바로 목적이 된다.
그 순간,
시간은 달리지 않고
옆자리에 앉는다.
세상이 아니라 ‘나’를 따라가는 속도
느리게 걷는 건
세상이 정한 속도에서 벗어나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속도를 찾아가는 일이다.
내 생각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내 감정이 숨 쉴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게.
길을 잃을까 두렵던 마음은
조금씩 풀린다.
왜냐면 느리게 걸으면
길이 나를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있고,
지금이 쌓인다.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속도를 낮추는 순간
세상이 더 말이 많아진다.
작은 바람,
무심하게 흔들리는 나무 잎,
햇빛이 벽에 그려놓은 부드러운 그림자,
어린 아이의 웃음,
빵집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한 향기.
빨리 걷던 때엔
단순한 배경이던 것들이
이제는 다정한 ‘풍경’이 된다.
느리게 걷는다는 건
세상을 감각의 단위로 살아내는 일이다.
스스로와 대화하는 걸음
느리게 걸을 때
생각이 따라오기 시작한다.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떠오른다.
“요즘 나는 괜찮은가.”
“무엇이 날 조급하게 만드나.”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빠른 걸음은 회피를 숨기지만
느린 걸음은 마음의 소리를 편안히 불러낸다.
걸음이 천천히 흐를 때
나도 조금씩 내가 되어간다.
마지막 문장
느리게 걷는 건
세상을 늦추려는 게 아니다.
나를 다시 맞추는 일이다.
조급함이 조금씩 가라앉고,
시간이 넓어지고,
마음이 몸에 도착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된다.
삶은 미리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
오늘 조금만 느리게 걸어보자.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길이
세상엔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