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다는 것의 의미

by 김지구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잠시 늦추는 순간,

세상은 갑자기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나가고,

차들은 리듬을 잃지 않은 채 움직이지만

나는 그 속도에서 한 발 물러나

내 호흡이 닿는 거리만큼 움직인다.

느리게 걷는다는 건 단순히 속도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그건 삶을 한 걸음의 크기로 되돌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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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고도 멈춰 있는 시간

빠르게 걷는 동안엔

길이 목적지에 종속된다.

도착해야 할 곳이 있고,

맞춰야 할 일정이 있다.

하지만 느리게 걷기 시작하면

도착이 목표가 아니게 된다.

걷고 있는 지금,

내 발 아래 있는 곳이

바로 목적이 된다.

그 순간,

시간은 달리지 않고

옆자리에 앉는다.


세상이 아니라 ‘나’를 따라가는 속도

느리게 걷는 건

세상이 정한 속도에서 벗어나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속도를 찾아가는 일이다.

내 생각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내 감정이 숨 쉴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게.

길을 잃을까 두렵던 마음은

조금씩 풀린다.

왜냐면 느리게 걸으면

길이 나를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있고,

지금이 쌓인다.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속도를 낮추는 순간

세상이 더 말이 많아진다.

작은 바람,

무심하게 흔들리는 나무 잎,

햇빛이 벽에 그려놓은 부드러운 그림자,

어린 아이의 웃음,

빵집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한 향기.

빨리 걷던 때엔

단순한 배경이던 것들이

이제는 다정한 ‘풍경’이 된다.

느리게 걷는다는 건

세상을 감각의 단위로 살아내는 일이다.


스스로와 대화하는 걸음

느리게 걸을 때

생각이 따라오기 시작한다.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떠오른다.

“요즘 나는 괜찮은가.”

“무엇이 날 조급하게 만드나.”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빠른 걸음은 회피를 숨기지만

느린 걸음은 마음의 소리를 편안히 불러낸다.

걸음이 천천히 흐를 때

나도 조금씩 내가 되어간다.


마지막 문장

느리게 걷는 건

세상을 늦추려는 게 아니다.

나를 다시 맞추는 일이다.

조급함이 조금씩 가라앉고,

시간이 넓어지고,

마음이 몸에 도착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된다.

삶은 미리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

오늘 조금만 느리게 걸어보자.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길이

세상엔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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