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엔 몰랐다.
늘 지나던 길, 늘 마시던 커피,
늘 보이던 창밖의 나무와
아침마다 들리던 엘리베이터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아무런 표정 없이 흘러가는
‘배경’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풍경 속에 서 보니
문득 이해된다.
내가 떠나온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익숙함은 때로 가장 큰 은폐다
매일 보던 풍경은
너무 오래 함께 있어
소중함을 드러낼 기회를 잃는다.
그러다 타지의 골목에서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바라볼 때
조용히 질문이 일어난다.
“내가 살던 곳의 하루도
이렇게 빛나고 있었을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네 빵집의 냄새,
저녁 햇빛 아래 아파트 복도의 색,
잠결에 들었던 버스 소리 —
사소한 것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결이었음을
조금 늦게, 그러나 깊게 깨닫는다.
떠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
여행지에서 우리는 유심히 본다.
사람들의 표정, 계절의 속도,
거리의 온도, 작은 정돈의 흔적.
그러다 생각한다.
“내 일상에도
이만큼의 디테일이 있었겠지.”
우리가 보는 게 달라지는 순간
생활은 풍경으로 돌아온다.
떠남은 그래서 도피가 아니라
돌아볼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불만은 줄고, 감각은 되살아난다
여행지에서조차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다.
낯섦, 불편함, 작은 실망,
예상 밖의 변수들.
그때 깨닫는다.
내가 떠나기 전 ‘불만’이라고 여긴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사실은 안전과 안정이었던 것임을.
따뜻한 이불, 말 통하는 편의점 직원,
마음 놓고 미루던 일요일 오후 —
그 모든 것이
편안함이 아니라 특권이었음을.
일상은 돌아와야 비로소 태어난다
여행은 결코 일상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돌아온 집의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공기가 반겨주는 느낌,
마시던 커피의 향이 다시 나를 앉히는 순간.
그때 비로소 안다.
여행은 떠나는 일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걸.
마지막 문장
떠나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떠나야만
이미 충분히 행복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여행이 일상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다시 환하게 밝혀준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떠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살아보기 위해,
다시 감사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문득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세상이 더 다정해진다.
그건 세상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