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채우기 위해’ 길을 오른다.
맛집 리스트, 명소 지도, 카페 북마크,
놓치지 말아야 할 스폿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촘촘한 계획이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채우는 여행이 아니라 비우는 여행이라는 걸.
계획 대신 여백을 가져보는 일
비우는 여행은 목적지를 줄이는 일에서 시작한다.
“오늘은 여기, 여기, 여기!”가 아니라
“오늘은 걸어보기.”
그 단순함 속에서
우리 마음은 숨을 돌린다.
스케줄이 없을 때
도시는 비로소 내가 걷는 속도로 열린다.
걸음과 호흡이 닮아가고,
눈이 바빠지지 않으면
머리가 고요해진다.
정보를 모으는 대신 감각을 풀어놓기
채우는 여행은
새로운 정보를 쌓는다.
비우는 여행은
이미 쌓인 생각을 내려놓는다.
어떤 카페가 유명한지보다
지금 향이 좋은 곳에 앉는 선택
치열하게 맛을 평가하기보다
따뜻한 한 끼에 감사해지는 마음
인생샷을 건지기보다
햇빛이 천천히 이동하는 걸 지켜보는 시간
비움이라는 건
세상을 덜 보겠다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느끼겠다는 선언이다.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시간
도시에 있을 때 우리는 늘 ‘해야 할 일’ 속에 산다.
여행을 와서도 그 습관이 그대로 따라온다.
비우는 여행은 이렇게 묻는다.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답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해야 할 일 대신
해도 되는 일, 하고 싶은 일.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조차 허락된다.
그때 마음에 붙어 있던 피로가
허공으로 가볍게 떨어진다.
외로움이 고요가 되는 순간
비우는 여행은
사람도 계획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벤치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불안이 아니라 평온으로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괜찮아지는 순간.
여행은 그때,
나를 완전히 품는다.
마지막 문장
채우는 여행이 화려함을 남긴다면,
비우는 여행은 나를 남긴다.
떠나온 길을 돌아볼 때
가방보다 마음이 가벼워져 있다면,
그 여행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우리는 결국
더 많은 경험을 쌓으러 떠난 게 아니라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만나러 떠난 것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하루가
여행의 본질일지 모른다.
나를 덜 채우고, 조금 더 느끼는 시간.
그게 비우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