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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Jul 08. 2023

사진가의 시선

수집과 채집

19세기 중반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사진기를 발명하면서 미술사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초상화를 필두로 회화는 재현의 기능에서 사진보다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자 사진이 채 담아내지 못하는 표현에 초점을 맞춘 폴 세잔(Paul Cézanne) 같은 화가가 등장해 자신이 보이는 대로를 화폭에 옮기고 받은 인상과 내면에서 꺼낸 감정, 생각을 의도와 버물려 이미지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그 후 19세기 후반 근대미술과 20세기 현대미술은 점차 재현보다 본질의 표현을 찾아 나서면서 다양하게 전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움직임을 담아낸 영상 매체가 일상에 밀접하게 침투하면서 새로운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사각 프레임에 담긴 순간은 사진가가 우연 때로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배열하고 수집, 채집한 경험을 시각화해 감각을 전달하는 표현의 역할을 겸하게 됐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담아낸 두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와 사라 반 라이(Sarah van Rij).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거장과 혜성처럼 나타나 주목받는 젊은 사진가의 시선이 담긴 전시가 남산 자락과 찬란한 도시 풍경을 두루 품은 피크닉(piknic)에서 나란히 펼쳐지고 있다. 작년 이곳에서 열린 사울 레이터 사진전의 계보를 이을 전시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두 사진가는 여행을 삶 속 예술로 구현해온 루이 비통의 트래블 포토그래피 출간물 시리즈인 <패션 아이(Fashion Eye)> 컬렉션의 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ée par François  Halard)> 전시가 진행 중인 피크닉(piknic) 본관. 이미지 제공: piknic.


프랑수아 알라르: 시간의 궤적을 수집하다 


사적인 공간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는 것은 타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가 짜놓은 섬세한 인생의 틀과 침묵이 짙은 농도로 스며든 집을 방문해 햇빛 한 줄기, 공기의 흐름이 꿈틀거리는 순간마저 관찰하고 포착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프랑스 출신의 포토그래퍼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으로 프레임에 무엇을 둘지 단번에 알아내는 안목과 오랜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교감하듯 인간적인 친화력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아늑함이 녹아든 공간, 빛과 조우해 시시각각 자태를 달리하는 정물의 내면,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을 사물의 속삭임, 생명력이 사진 한 점 한 점에 깃든다.


피크닉의 정원 산책길을 거쳐 나무문을 열고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ée)’라는 전시 제목을 써놓은 폴라로이드 사진 프레임이 여느 현관 문패처럼 우리를 맞이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벨기에의 대표적인 갤러리스트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악셀 베르보르트, 텍사스 휴스턴의 이름난 컬렉터 존 드 메닐, 생 로랑과 베르제가 각각 생을 꾸려온 공간이 교차한다. 아프리카 마스크와 로만 조각, 혹은 몬드리안 작품과 아시아 조각이 한데 모인 풍경이 클로즈업으로 포착되는가 하면, 선명한 오렌지, 초록색 스트라이프 벽지가 감각적인 빌라 판자, 깊은 흑백 명암 속 빌라 노아유, 정제된 베이지 톤의 랑베르 저택까지, 색채의 향연이 연달아 펼쳐진다.


남프랑스 로크브륀-카프-마르탱(Roquebrune-Cap-Martin)에 자리한 아일린 그레이 주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 그레이의 공간이다.


아일린 그레이 저택의 해 질 녘, 데이비드 호크니의 LA 저택 수영장,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조르조 모란디 스튜디오의 정물들, 루이즈 부르주아의 관심사로 가득 찬 뉴욕 집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분위기 너머로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과 신념이 버무러져 있다. 한때 로마제국의 위용을 과시했으나 현재는 지진과 내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된 레바논 인근의 작은 고대 도시 발베크, 사랑하는 연인이 떠난 후 쓸쓸함이 감도는 사르데냐 라 쿠폴라, 무너져가는 폐허가 된 엘레우사. 시간이 설계한 궤적, 세월이란 수레바퀴의 무게를 느끼며, 진정한 목적지는 장소가 아닌 새롭게 보는 방식이라는 한 소설가의 말이 맴돈다. 그의 다음 여정은 어디가 될까. 7월 30일까지.


피크닉 별관에 선보인, 사라 반 라이가 함께한 여행 사진집 컬렉션 <루이 비통 패션 아이> 서울 편 발간 기념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루이 비통.


사라 반 라이: 순간의 미학을 채집하다


피크닉 별관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의 사라 반 라이(Sarah van Rij)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서울이란 도시의 진솔한 면을 부각한 사진전을 선보이고 있다. 루이 비통 <패션 아이(Fashion Eye)> 서울 편 출간을 기념해 책에 실린 69점을 망라한 전시다. 2022년 초여름, 한국은 물론 아시아 대륙 자체를 처음 방문한 작가는 아무런 편견 없이 온전한 백지를 위임받는다. 서울 시민이 으레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 평범한 매일매일은 순간의 이야기로 빚어진다. 


<루이 비통 패션 아이> 서울 편에는 처음 방한한 작가가 편견 없이 채집하듯 서울의 풍경을 포착한 작품이 대거 실렸다.


사물에 가려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의 모습을 포착하고, 동시대의 지표인 휴대폰이나 자동차는 의도적으로 배제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시대의 면면을 꿰뚫게 하고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원근감마저 사라진 듯한 프레임 안, 작가는 시간을 초월해 30년 전에도 존재했고, 30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서울의 결을 직접 발로 뛰며 하나하나 소중히 채집한다. 우연이 빚어낸 결정적 순간을 여러 차례 중첩시킨 이미지 너머로 작가는 오래된 것들, 그래서 그곳에 사는 거주민에게 점점 잊혀가는 것들을 켜켜이 담아내 그리움을 자아낸다. 서울에 헌정해 무료로 공개되는 <루이 비통 패션 아이> 서울 전시는 7월 2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piknic.kr) 참고.


Style Chosun 2023년 Art + Culture Summer 에디션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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