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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Dec 17. 2023

아니쉬 카푸어의 크레센도

프리즈가 휩쓸고 지나간 9월 첫째 주, 코엑스 3층 페어장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색색깔 거울 앞에서 스스로의 모습, 지나가는 관람객, 혹은 반사된 작품을 두루 품은 순간을 포착해 내는 이들이 갤러리 부스 여럿에서 수차례 목격되었다. 다채로운 색채만큼 변주를 거듭하는 Mirror/Untitled 시리즈로 주요 아트 페어에 늘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니쉬 카푸어. 70세의 나이를 목전에 두고도 세계 곳곳에서 항시 크고 작은 전시를 개최하고 있거나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며 결코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이다.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K3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The Bean’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시카고의 상징적인 공공미술 작품 ‘Cloud Gate’를 비롯해 서울에서는 리움 야외 중정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자신 혹은 주변의 모습을 부러 들여다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반사형 작품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작가는 오랜 시간 깊은 스펙트럼의 세계를 확립해 왔다. 노랑, 빨강 등 농도 짙은 원색의 고운 입자를 집요하게 쌓아 명상으로 이끄는 설치부터, 모든 빛, 소리마저 빨아들여 림보로 이끄는 듯한 검정 그 자체로 잊기 힘든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K1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인도 뭄바이 생의 작가는 런던 소재 미술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학업을 마무리하며 떠난 인도 여행에서 풀리지 않던 예술적 의문과 갈망에 대한 실마리를 잡게 된다. 아니쉬 카푸어는 202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회화가 “무언가를 가시화하는 방식에 대한 역사인 반면, 나는 그와 정반대의 일, 즉 무언가를 어떻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천착했다”고 밝힌다. 자신이 그간 다뤄온 물질의 한계에 도전해 비물질에 주목해, 공(空, Void)을 넘나드는 양상으로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K2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내에서 전에 없던 미술 축제의 상륙 2회째를 맞이해 국제갤러리는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를 전관에 공개했다. 심혈을 기울인 이번 전시는 ‘신체’에 집중한 작가의 연구가 돋보이는 조각, 오브제, 페인팅, 드로잉 작업 등을 폭넓게 소개하고 보는 이의 극히 원초적인 감각의 심연을 건드리고 자극한다. 2016년 이후 7년 만의 귀환이다. 7년 전의 전시가 고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꼬인 곡선, 반짝이는 은빛 조각들로 당시 갤러리를 방문한 관람객들을 유혹하는 듯 빨아들였다면, 이번에는 카푸어 블랙으로 불리는 조형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허탈감 때로는 기발함에서 비롯된 감탄이나 헛웃음마저 자아진다.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K1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핵심은 무엇이 물질적이며 무엇이 그 물질을 초월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모든 작가가 하는 일의 본질이자 미술의 주요한 방법론적 지향점이다." - 아니쉬 카푸어


무심코 큰길에서 가까운 순으로 국제갤러리 K1-K2-K3 동선(크레센도)으로 관람하려고 했다면, K3-K2-K1로 이루어지는 동선(디크레센도)을 고려해 보기를 추천한다. K3의 강렬한 대형 조각에서 출발해 K1 깊숙한 갤러리에서 모든 것을 수렴시키는 오브제에 조용히 안착할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보더라도 머릿속에서는 강한 울림이 한동안 오랫동안 멈추지 않겠지만 말이다. 


장소 국제갤러리 K1, K2, K3

기간 2023.08.30 - 2023.10.22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3.09.19 게재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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