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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Dec 20. 2023

마크 로스코

색채가 스며든 음률을 마주하다

지난 9월, 우리는 프리즈 서울을 통해 이름난 글로벌 아트 페어가 열릴 때, 그 지역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얼마나 전시에 공을 들이는지 익히 경험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과 동일하게 2회째를 맞이하는 아트 바젤 파리 플러스(Paris + par Art Basel, 10월 18일~22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리의 대표 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는 피카소 작고 50주년을 기념해 그의 드로잉에 헌정한 전시를 10월 13일 오픈했으며,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소피 칼, 로댕 미술관에서는 안토니 곰리의 전시가 각각 개최돼 화제를 모았다. 퐁다시옹 까르띠에에서 지난 6월 막을 올린 론 뮤익 전시와 마이크 켈리 개인전을 새로이 앞세운 부르스 드 코멕스 피노 컬렉션에는 꾸준히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튈르리 정원에서는 아트 페어의 일환으로 야외 설치 작품이 곳곳에서 파리를 찾은 이들을 반겼다. 평상시 미술 전시 외 용도 공간에서도 장소 특정적 작품 전시가 열려 눈길을 사로잡았다. 팔레디에나(Palais d’Iéna) 일층의 넓은 홀 안으로 내리쬐는 햇빛과 조우한 다니엘 뷔렌과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두 거장의 작품이 이내 관람객과 조응한다. 주요 갤러리는 앞다퉈 에텔 아드난(Galerie Lelong), 로랑 그라소, 엘름그린 & 드라그셋(Perrotin)의 개인전을 연달아 선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 호암미술관 정원 작품 등으로 한국 대중과도 꾸준히 교감해 온 장-미셸 오토니엘이 아트 바젤 파리 플러스를 목전에 두고 프랑스 최고 영예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한 소식 또한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Self Portrait, 1936, Oil on canvas, 81.9 x 65.4 cm, Collection of Christopher Rothko (제공: 루이 비통 미술관)


작년 이 시기에 조안 미첼과 클로드 모네의 2인전을 공개해 화제가 되었던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올해 내세운 전시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회고전이다. 무려 작품 115여 점을 한데 모았다. 로스코를 기리는 이번 회고전은 작가의 작품 활동 전반을 추적한다. 1999년 당시 파리시립미술관장으로 마크 로스코 전시를 선보인 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아티스틱 디렉터 수잔 파제가 24년 만의 파리 전시를 당시 전시를 극찬했던 마크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스코와 함께 이끌었다. 


전시는 초기 인물화부터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추상화에 이르는 작품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전 공간에 연대순으로 펼쳐 보인다.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및 런던 테이트 모던, 뉴욕 MoMA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은 물론, 휴스턴 로스코 채플을 창립한 존 & 도미니크 드 메닐(de Menil)의 컬렉션 외에도 작가의 유산을 지켜오고 있는 후손의 개인 소장품에 이르는 컬렉션들이 전에 없이 자리를 함께했다.



비교적 대중에게 덜 알려진 마크 로스코의 초기작으로 시작하는 갤러리 1 공간의 전경


"내가 화가가 된 이유는 그림에 음악과 시만큼이나 강렬한 감정의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I became a painter because I wanted to raise painting to the level of poignancy of music and poetry." - 마크 로스코


서막을 연 초기작을 보고 받은 충격은 가히 대단했다. 뉴욕 지하철 풍경을 이토록 정적으로 그린이가 또 있었나. 1930년대 초기작은 도시 풍경, 인물을 개성 넘치는 터치로 그려낸다. 근처에서 작품을 보던 한 관람객은 작품 앞에 유난히 오래 머물며 이제 로스코의 추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싶을 정도로 구상이 뛰어나)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Slow Swirl at the Edge of the Sea, 1944, Oil on canvas, 191.1 x 215.9 cm, Museum of Modern Art, NY


일상 속 이미지, 자화상을 지나 작가는 전쟁 한복판에서 목도할 수 있는 인간의 비극적인 면모를 표현하기 위해 고대 신화와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에 담아냈다. 궁극의 미술을 찾아 고심을 거듭하던 로스코의 작품에는 베이컨도, 피카소도, 미로도, 샤갈도, 아프 클린트도 있었다. 전시는 독창성 너머 한바탕 속 시끄러웠을 방황을 거쳐 다양한 형태에 잠시 머물다가 차차 추상으로 정착하는 그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에게 예술은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과도 같다."

"To us, art is an adventure into an unknown world, which can be explored only by those willing to take the risks." - 마크 로스코


추상표현주의로의 전환을 이룩해 내는 1940년대 말 작품들이 소개된 지하 1층 갤러리 전경.


1946년부터 로스코는 추상표현주의로의 중요한 전환을 이룩해 낸다. 이 전환의 첫 단계는 멀티폼(Multiforms, 색면 다층형상) 양식으로 발현되는데, 이 시기 로스코의 작품은 색감의 덩어리가 캔버스 면에 균형을 이루며 부유하는 양상을 띠며, 음표가 된 듯 읊조린다. 이후 이러한 양식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림 속 색면의 시각적 배열은 오늘날 많은 이에게 익숙한 로스코의 "고전적" 화풍으로 진화한다. 이 시기 로스코의 작품에 나타난 직사각형 형태는 이중 또는 삼중 리듬에 따라 중첩되며, 노랑, 빨강, 주황뿐만 아니라 연두, 파랑, 흰색 등 좀처럼 정의 내릴 수 없는 특징적인 색감을 띤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유화나 성당 벽면의 프레스코화는 색채를 구상하는 데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Black on Maroon, 1958, Oil, acrylic, glue tempera, and pigment on canvas, 266.7 x 381.2 cm, Tate


아직 10월 말이지만 감히 올해의 전시로 꼽아보는 이번 전시의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말문이 막히고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 없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조도를 극히 낮춘 The Rothko Room Tate London의 검붉은 색을 머금은 연작 전 시리즈를 지나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축물의 위쪽으로 점차 다다른다.


전시가 막바지로 다다르면 재단의 소장품이자 루이 비통 메종 서울 내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개관전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자코메티 작품이 보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층고가 가장 높아 계곡에 들어서는 듯한 마지막 갤러리에 발을 딛는 순간, 그야말로 모든 전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에 있다." 

"I am interested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 -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과 블랙-그레이 배합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마크 로스코> 회고전 마지막 갤러리 전경.


장소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8 Av. du Mahatma Gandhi, 75116 Paris)

기간 2023.10.18 - 2024.04.02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3.10.24 게재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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