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주 꼬마일 때부터 언제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이야말로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60년 동안 계속했다.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이 일이 아직도 흥미롭다." -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은 그리는 이로 하여금 보이는 것을 화폭에 담는 과정에서 주변 세상을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림을 관람하는 이에게는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이를 그린 사람의 시각을 잠시 빌려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어찌 보면, 평면의 네모난 캔버스 속에 우리가 응시하는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세계를 오롯이 포착한다는 것은 애초에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림 속에 공간 너머로 시간과 움직임을 투영하려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를 지난 60여 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자연과 사람, 사물을 무던히 관찰하고 그림 속에 포착해 온 그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조금은 색다른 레이어를 지닌 전시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화가인 동시에 “미술에 대한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지닌 사색가 ”인 호크니는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 위에 재현하는 과정의 역설에 대해 평생 탐구해 왔다. 회화라는 장르에 머물지 않고, 사진, 판화, 삽화, 오페라 무대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전개해 오며, 매체뿐 아니라 작업 방식 또한 한정 짓지 않았다. 2010년부터 아이패드를 활용한 드로잉 작업을 시작한 그는 2021년 런던 왕립미술원에서의 개인전에서 아이패드로 그린 작품 116점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기술이나 디지털 매체 도입에 거침없는 노장의 폭넓은 예술 세계와 멈추지 않는 도전은 2023년 2월 런던 라이트룸에서 공개된 최첨단 프로젝션 맵핑 몰입형 전시로 이어진다.
기존의 실감형 전시가 반 고흐, 클림트 등 유명작가의 콘텐츠로 꾸려져 다소 대중적으로 비친 것에 반해 런던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현존 작가가 전시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David Hockney: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는 호크니의 원근법 수업으로 시작해, 로스앤젤레스, 요크셔와 노르망디를 넘나들며 총 6개의 주제를 총 53분에 걸쳐 보여주며 마치 하나의 공연을 방불케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실험과 진화를 거듭하며, 가장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에 동시대성을 끊임없이 불어넣는 거장의 예술 여정을 풀어내는 전시는 관객 또한 사색의 세계로 인도한다. 호크니의 통찰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궁무진하다. 과학 기술의 변화가 예술가의 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예술의 근원에 근접하는 의문일 수도, 한편으로는 해돋이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드라이브하는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나 보는 방식에 대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나쁜 날씨라는 것 없다는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은 내 눈과 마음으로 보기 나름 아닐까.
장소 라이트룸 서울(서울시 강동구 아리수로61길 103)
기간 2023.11.01 - 2024.05.31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3.11.14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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