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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Jan 13. 2024

올해의 작가상 2023

4인 4색 예술세계

예술에 관한 바탕은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한다. 찰나의 아름다움이 짙게 배어 있는 역사를 거듭해 온 만큼 미적 가치를 시각적, 감각적으로 풀어내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포착하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내 사진과 영상에 이르는 기술이 이러한 재능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술가는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탐구하고 사회 속 현상을 파헤치는가 하면, 이내 인생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뛰어난 관찰자로 거듭난다. 독창적인 시선을 앞세워 감정과 경험을 작품에 불어넣거나 과학기술을 매개 삼아 관람객과 소통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단순히 미적인 것을 넘어 오늘날 예술의 근본원리를 고찰하게 만드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바로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4인의 예술세계를 담아낸 <올해의 작가상 2023>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3> 포스터, 슬기와 민 제작.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를 후원하고자 2012년에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요 연례 전시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올해의 작가〉 전의 취지를 이어 전도유망한 작가 발굴과 지원에 역점을 두고 SBS문화재단과 공동 운영하는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수상제도이기도 하다. 1차 심사를 통해 후원작가 4명(팀)을 선발, 지원해 전시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고, 2차 심사를 통해 1명을 최종 수상자이자 올해의 작가로 선발해 작품 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해 현대미술 저변을 넓혀왔다. 2022년 10주년을 맞아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제작지원 및 후원 규모를 확대했다. 무엇보다도 신작 커미션을 보여주던 전 에디션과 대조적으로 작가의 이전 주요 작업도 함께 출품해 작가의 주제의식이 전개되는 과정과 더불어,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한층 심도 있게 이끌어 내고자 기획을 강화했다. 오는 2024년 2월 작가,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 및 관객 참여 워크숍 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 심사방식도 과감한 변화 중 하나다. 


올해 선정된 4명의 작가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과 답을 던진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문명과 역사의 흐름, 제도의 뿌리와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작업 세계는 우리 시대 미술이 직면하는 철학적 실천적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병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 2023, 혼합 재료, 가변크기, 작가 소장.


90년대 초반 싱어송라이터로 경력을 시작해 2000년대 이후부터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소리를 기록해 온 권병준 작가는 입체음향이 공간에서 시각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사운드 작업, 퍼포먼스 연출로 공동체 속 인간의 연대 가능성에 관한 실험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소리의 움직임, 소리를 제어하는 움직임, 소리의 리듬이 확장되어 하나의 행위이자 연주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조화를 이루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이러한 작업의 연장 선상에서 로봇 작업을 한다. 2017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단체 입국했을 때 벌어진 대중의 배타적인 목소리와 이를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실망했던 만큼 로봇을 되레 낯선 존재, 즉 이방인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자 했다. 고장이 날 수도 있는 로봇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소임을 다하고자 기계적 연극이 연출되는 시간은 일부 제한되거나 기기를 점검(마저 하나의 퍼포먼스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갈라 포라스-김,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2023, 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 x 182.8(3)cm.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콜롬비아-한국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은 기억, 역사, 문화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제도권이 문명의 흔적인 유물과 맺는 관계를 다층적으로 탐구해 왔다. 현재 리움에서 고미술품과 공존해 선보이는 〈국보〉 전시를 통해서도 고대 유물이 현대 체계와 만나는 지점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시대별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이해하면서 작품 제작을 위한 영감을 주로 받는다. 역사를 정리해 현재 시대의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에 시대를 반영한 역사적 자료가 이를 접하는 세대마다 다르게 틀이 짜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는 예술이 이미 정립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뒤흔드는 임무를 지닌다고 말한다. 고인돌 같은 하나의 소재를 다르게 바라보는 고대(무덤)와 현대(문화유산)의 기록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해하는 방식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박물관 수장고에서 채집한 곰팡이가 기존 소장품을 뒤덮고 전시실에서 새로운 형태로 자라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법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강승,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2022, 삼베에 앤틱 24K 금실, 호두나무 액자, 약 38 x 57cm, 액자: 48 x 67 x 6cm. 개인 소장.


이강승 작가는 연구 조사에 충실한 작가이다. 현대미술이 하나의 동떨어진 섬이 아닌 수많은 현대예술 장르(음악, 영화)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기에 작품을 바라보며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 믿는다. 개념미술 작가로 스스로를 정체화해 온 작가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퀴어 커뮤니티, 소수자의 역사를 미술을 통해 재조명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안한다. 누군가의 기억을 간직하고, 계속해서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보다 전달자의 입장에 있다고 여긴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존재한 공동체의 역사를 연결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바탕에 “돌봄”이라는 행위를 앞세워 유의미한 이야기를 전승하고자 한다. 


전소정, 싱코피, 2023,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9분 30초. 작가 소장.


전소정 작가는 영상, 사운드, 조각,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로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현재에 대한 관점에 균열을 내는 풍경, 이야기, 도시의 시간을 몸으로 바라보고 해체하는 시도 등으로 예술의 태도를 고민해 왔다. 듣기가 늘 작업의 출발이 되어왔다고 전하는 작가는 작업을 하나의 여정으로 비유한다. 영상에 시공간을 짓는 예측 불가한 상황들의 연속을 그리는 관점에 주목하며, 작가는 시간의 층위들의 뒤섞임으로 범벅된 작업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스크린 안에 펼쳐지는 모습을 구현한다. 우연적이고 때로는 무의미하지만 경이로운 기억을 되짚는 서정적인 내레이션, 실시간으로 흐르는 영상의 속도, 소리에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2023년 올해의 작가 후보 4인은 자신만의 결로 동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읽고 자신만의 관점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보는 행위,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에 반응하고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든다. 전시는 2월의 워크숍을 거쳐 3월 31일까지 계속되며,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은 상시 무료 관람, 일반 성인 관람료는 2000원이다. 수요일과 토요일 야간개장(18:00~21:00) 중에는 성인도 무료 관람 가능하나 권병준 작가가 제안하는 로봇들의 공연은 정적으로 쉬는 시간이라는 점을 참고하자.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1층 2, 3, 4 전시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기간 2023.10.20 - 2024.03.31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3.11.30 게재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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