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을 이어 빚는 오토봉 엥캉가의 매혹적인 예술 풍경
오토봉 엥캉가
나이지리아 카노 태생인 오토봉 엥캉가(1974~)는 유년기 대부분을 아프리카에서 보내며 땅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녀의 주변에는 다양한 지형과 지층이 자리해 있었다. 그저 발걸음을 가볍게 내딛기만 하면 되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유기물 사이를 터벅터벅 걷거나 수백 년 된 암반층을 드러내 보이는 지각 표본을 탐색하던 어린 시절처럼 그녀는 늘 뿌리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반복한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굵직한 미술 행사에 초대된 그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환경오염, 착취와 고갈,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의문을 제기하고 치유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오토봉 엥캉가는 시간을 고증하는 일에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며, 적극적 관찰자이자 가능성을 탐구하는 사람, 더불어 시인으로서 그 일을 대한다.
오토봉 엥캉가의 매혹적인 작품들이 최근 예술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장소(a place of non-belonging)로서 토지의 개념을 지질학적·담론적 구성으로 바라보며, 사회 속 정체성의 의미를 재정의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으로 그는 땅과 흙의 본질적 복합성과 잠재적 가치를 주제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최근에는 스페인 IVAM(Institut Valencià d’Art Modern) 훌리오 곤살레스 센터(Centre Julio González)에서 개최한 개인전 〈Craving for Southern Light〉를 통해 특유의 내러티브를 풀어내며 자아, 기억, 인간과 자연의 관계, 역사적 영향을 조명하는 등 땅과 사람을 잇는 매개자로서 증언을 이어나간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급속히 변화하는 패러다임, 기술혁신 속에서 지구온난화, 국가 간 혹은 국내의 사회적·경제적 격차 등 수많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어려운 시기는 지속 가능한 성장, 회복력 강화,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노력을 재설계하는 기회의 도약판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우리 앞에 놓인 해법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연대의 정신과 능력을 키우는 데 그 어느 때보다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쟁과 기후 위기 속에서 열정적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오토봉 엥캉가의 행보는 작금의 우리에게 결코 미뤄서는 안 되는 숙제를 던지고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오토봉 엥캉가는 정체성과 세계화, 인간과 환경의 관계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드로잉, 페인팅, 조각, 사진, 설치,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를 포함한 작가의 다학제적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개최한 전시를 통해 국제적 인지도를 쌓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은 작가는 끊임없이 또 다른 담론을 제기했다.
작가가 최근 참여한 전시 중 2024년 1월 7일까지 스페인 IVAM에서 열리는 개인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남쪽의 빛을 갈망하며(Craving for Southern Light)’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20년 예술 여정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대지와 자연의 역사를 추적해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 문학, 비디오에 이르는 폭넓은 매체로 인간과 땅의 갈등에서 파생되는 환경적·사회적 문제, 경제적 불평등, 착취, 자원 고갈 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치유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담았다.
전시는 작가의 독특한 예술적 비전과 생각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시를 기획한 IVAM의 누리아 에우귀타 관장은 “작품은 자원 추출, 식민주의 등 인간 활동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만 늘 우리에게 행동을 촉구하고 치유의 능력을 함께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큰 창으로 자연의 빛이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는 미술관에서 ‘남쪽의 빛을 갈망하며’라는 전시 제목을 지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그 제목이 곧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반향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보는 빛(light)뿐 아니라, 무거움의 반대 개념인 가벼움(lightness)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말은 농경을 시작하기 1만여 년 전에는 전체 지구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1% 미만이었으나, 오늘날 78억 인구가 만들어낸 (문명의) 무게가 96~99%에 달해 자연계 역사에 이런 반전은 없었다고 우려하던 한 생태학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인류가 완벽하게 지구를 뒤덮었다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전시는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여러 장의 드로잉, 대형 태피스트리와 함께 시작한다. 늘 작가와 함께해 온 시적이고 정치적인 도상학을 정의하며 신체, 공간과 상호 연결된 움직임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통해 허구를 만들어내는 작가 특유의 내재된 힘을 보여준다. 드로잉 속 인물은 여러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일, 소속감, 소유, 가족과 함께하는 장면, 그리고 갈등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 도식적인 그림을 시리즈로 배열하고 특유의 컬러 팔레트를 통합하며 작가는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이어지는 전시실에서는 현장에서 구현한 새로운 작품의 본거지가 펼쳐진다. 스페인 여행, 작가가 도시와 미술관에서 맺은 관계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불안한 풍경, 어둠, 어둠과 빛 사이 감정적 공간은 위태롭고 깨지기 쉬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세계를 연상시키는 추상적 형태로 빚은 점토는 생태적·경제적·정치적 현실의 취약성을 떠올리게 한다. “한 장소에 있으면서 그곳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고, 그곳에 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마니세스의 도자기 공방인 스튜디오 도마니세스(Domanises)와 협업해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예술가와 장인들은 공통의 언어인 흙과 연결되어 마음에서 우러난 서사를 함께 완성해 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생태계의 재생을 다룬 조각품이 자리한다. 생명을 품은 수용자 또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공간 주위를 구불구불 움직이는 일련의 밧줄은 큰 공을 통과하거나 천장에 매달려 교차하며 관람객과 만난다.
카셀 도쿠멘타 14 기간에 아테네에서 처음 비누 제조 실험실로 제시한 3단계 프로젝트 ‘Carved to Flow’(2017)와 일련의 태피스트리, 화산암 바닥, 그리고 광물과 소금을 포함한 채 발굴된 지형인 거꾸로 된 언덕을 시적으로 번역한 설치 작품 ‘Solid Maneuvers’(2015)도 선보였다. 언뜻 버려진 발굴 현장을 연상케 하는 조각품은 오늘날 상처 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오토봉 엥캉가는 다학제적 접근 방식을 통해 경계를 지속해 확장하고 관습적 표준에 도전한다. 다양한 매체를 무난하게 통합하고 수많은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능력은 그녀의 예술적 탁월성과 작품의 보편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현대미술의 풍경을 가장 복잡하고 확고하게 표현해 온 작가가 2022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것은 현대미술계에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녀의 작품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코로나19의 영향력이 사그라지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 참여한 비엔날레에서 엥캉가는 생각을 자극하는 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환경의 지속 가능성과 자연자원의 착취 같은 주제에 대해 한국 관람객과 상호 교감하고, 우리로 하여금 지구와의 상호 연결성과 우리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인도했다.
국제적 명성에 비해 아시아에서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터라 작가의 부산비엔날레 참여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작가를 아시아의 땅과 연결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시리즈였다. 상하이에 초점을 맞춘 에디션에 참여한 오토봉 엥캉가의 일러스트는 도시의 본질을 아름답게 담아내며, 그녀의 예술적 실천과 상호작용하는 시각적 서사를 제공했다. 작가 특유의 해석을 가미해 국제적 도시 상하이를 표현한 그림을 포함했으며, 그녀의 독특한 시각과 함께 상하이의 활기찬 에너지와 문화적 풍부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오토봉 엥캉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그 결과물을 담아내는 과정 자체가 궁금하다면, 3주간 여정과 1만 장의 사진을 토대로 펴낸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상하이 편을 들여다보자.
작가가 루이 비통 편집팀에서 트래블 북 에디션에 참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취재하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상하이를 꼽은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중국을 떠올릴 때마다 중국이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세네갈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중국에서 온 제품이나 생산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이지리아에 도로 건설을 하는 것이 중국인 것도 같은 이치다. 오토봉 엥캉가에게 한 나라를 핵심부터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중요한 일이었다.
중국에 도착했을 때, 작가는 사람들이 공간을 통해 이동한다는 아이디어 그 자체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일종의 자기만의 세계, 즉 ‘자기만의 플랫폼’에 있는 개인이나 모여 있는 한 그룹의 사람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녀가 한 일은 상하이 구시가지에서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 푸둥과 푸시 지역부터 아르데코 건물이 곳곳에 들어선 강가의 와이탄까지, 상하이 사람들의 다양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커피나 음료를 살 수 있는 매점 같은 소소한 장면은 물론 아름다운 위위안 정원부터 항구까지 다양한 풍경을 포착하려고 노력했으며, 32.5㎞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다리인 둥하이 대교(東海大橋)에서는 영원히 이어지는 용의 몸짓을 대비시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싶은 장면 앞에서 그걸 그리기 어려운 이유는 그 본질을 잡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사진을 많이 찍기로 결정했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많은 경험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곳에 가면 꽃향기를 맡고 느껴야 하는데, 그것은 풍경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이니까요.”
오토봉 엥캉가는 지역마다 챕터를 구성해 와이탄, 푸둥, 훙차오에 각각의 팔레트를 부여하고 그만의 색상을 얻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특정 시간을 그려내기 위해 유동적이면서도 무거움과는 거리가 먼 부드러운 붓질을 이어나갔다. 거의 꿈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부드러운 붓질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때때로 초고층 빌딩, 물에 반사된 풍경 앞에서 초현실적인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평소에 스케치 없이 그저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엥캉가는 상하이에서 하나의 풍경을 보면 그 이미지가 자신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득한 장면에 나무를 함께 그리는 식으로 그녀만의 갈망을 채우곤 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에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이 도시 저 도시 옮아다니는 삶을 살게 된 오토봉 엥캉가. 붐비는 도심 속 바쁜 일상 혹은 모처럼 마음먹고 떠난 상하이 혹은 여행지에서 각자의 템포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관찰하다 사물과 사람, 자연의 존재, 일상의 기록이 결국 삶 속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결국 엥캉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는 것은 ‘매일매일’이라는 일상을 거닐며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이라는 값진 선물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는지.
Artnow Issue 44 (Winter 2023) WORLD ARTIST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