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깨어나는 공간
도쿄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에노우라 측후소. 대도시의 활기와 전통이 공존하는 수도를 벗어나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고요한 풍경에 닿는 여정은 그 자체로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예로부터 인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수히 많은 궁금증을 품어왔다. 하늘은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근본이자 질서였다. 태양의 움직임과 별의 궤도, 바람과 구름의 움직임은 농경과 이동의 적기, 의례와 신을 기리는 날을 헤아리는 기준으로 거듭났다. 하늘은 단지 머리 위에 펼쳐진 배경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지표였다. 옛사람들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를 따라 달력을 만들어 천체의 흐름을 낮과 밤으로 구성된 하루로 빚어 아로새겼다. 비와 가뭄은 땅의 운명을 가늠하는 징후였다. 하늘의 움직임을 읽고, 삶을 조화롭게 맞추려는 인류의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학, 나아가 인문학의 토대가 되었다. 스톤헨지, 고대 마야문명의 천문대, ‘별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의 신라 첨성대, 그리고 지금도 세계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그리니치천문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구조물은 시대와 문명을 넘어 꾸준히 등장했다. 여기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이해하고자 한 시도가 담겨 있다. 세종 시대의 과학자 장영실 등이 그 원리를 직접 관측하고 기계로 구현해 낸 양부일구, 자격루를 비롯한 발명품은 누구나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만든 장치로 백성의 삶에 이를 더욱 가까이 가져왔다.
예술의 기원을 향한 여정
동서고금의 이러한 역사적 시도는 도쿄 인근 소도시 오다와라에 자리한 에노우라 측후소와도 맞닿아 있다. 이곳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관측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입장 후 한참을 걸어도 데이터를 측정하거나 예보를 전하는 장비는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입장 시 제공하는 최소한의 안내 외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길목에 가끔 보이는 화살표를 따라 그저 걸을 뿐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에노우라 측후소는 사진, 조각, 건축, 공연 예술을 아우르며 시간의 흐름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해 풀어내는 현대미술가 스기모토 히로시(Hiroshi Sugimoto)의 역작이다. 결정적 순간을 감지해 포착하는 여타 사진작가와 달리 스기모토의 작업은 철저히 개념적 구상에서 출발한다. 과학적이고 엄격한 접근 방식은 그의 건축 작업이자 공연, 명상, 천체관측이 융합된 종합예술 공간인 에노우라 측후소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스기모토 히로시에게 에노우라 측후소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의 영적 고향에 가깝다. “이 장소를 찾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고 회고한 그는 “의식이 시작되고, 기억이 끊기는 그 경계에서 이 장소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건축을 넘어 예술에 가까운 구조물을 상상하게 된 것도, 개인의 내면 깊숙이 침잠해 인류 공통의 기억을 되짚는 그의 예술적 화두와 공명한다. 그의 작업은 늘 ‘의식의 기원’을 향해 있다. ‘인류는 어떻게 자각하게 되었는가? 의식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오랜 탐구는 그가 일생을 바쳐 붙든 질문이다. 스기모토는 태양의 궤도와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는 본능에서 예술의 기원을 찾았다.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한 인류가 남긴 최초의 흔적은 동굴벽화였으나, 차차 예술은 신성한 존재의 형상과 왕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며 본래의 정신을 잃어갔다. 스기모토는 ‘오늘날 예술은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고, 그에 대한 답 중 하나로 에노우라 측후소를 지었다. 스기모토는 자연의 순환을 관찰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습관이고, 이것이 곧 예술적 본능이라 여겼다. 계절의 전환점을 관측하고, 고대의 시선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후, 그 속에서 미래로 나아갈 길을 암시하는 단서를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일본 전통 공연 예술 보존을 목적으로 설립한 오다와라 문화재단을 거점으로 20여 년간 기획과 준비, 건설을 거쳐 2017년 마침내 다방면에 걸친 한 예술가의 열정을 응축한 공간이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스기모토 히로시가 설계한 건축물 안 100m에 달하는 복도에는 그의 대표 연작 ‘바다 풍경(Seascapes)’이 걸려 있다. ‘바다 풍경’ 연작은 ‘고대인이 바라본 바다 풍경’을 재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했다. 해가 수평선 위로 솟고,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다시 해가 뜨는 단순하면서도 영원한 순환 속에서 인간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태양의 궤적과 계절의 변화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일깨웠고, 그것이 곧 ‘의식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스기모토는 “고대 문명이 태양을 숭배하고, 동지와 하지 같은 전환점을 기념한 제의와 석조 기념비들을 예술로 되살려 고대인의 영성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매년 1월 1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바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배 한 척 없이 수평선을 경계로 고요한 바다와 하늘만이 존재하는 이 작품은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순수한 시간과 공간을 담아냈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가장 원초적인 시선에 집중하고자 한 시도다.
자연을 경험하는 건축
측후소의 건축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무척 섬세하다. 커다란 유리창과 정제된 회랑, 질감이 살아 있는 돌길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걷다 보면 특정 방향으로 몸이 절로 이끌리는데, 건축 구조를 빛의 이동 경로를 고려해 설계했기 때문이다. 빛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가 건축 구조의 방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처럼 태양고도가 뚜렷이 변화하는 시기에는 해가 드리우는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도 달라지며 자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건축물을 나서면 산책로가 이어진다. 왼쪽으로 향해도, 오른쪽으로 향해도 결국 길은 이어진다. 새들이 바삐 지저귀고, 풀 내음이 뒤엉킨 바람이 고요함 속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대나무 숲으로 향하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길,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주변을 살피고 자연을 묵묵히 마주한다. 완만한 경사를 이뤄 배려가 느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간간이 비추는 햇살을 머금은 맑은 공기에서 싱그러움이 배어난다. 길 따라 곳곳에 놓인, 세월의 흔적과 이끼를 두루 품은 석탑에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윽고 화석 동굴로 불리는 오두막과 누군가의 간절한 기원이 스며든 흰 줄이 달린 고목이 세로로 누워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고목을 지나 바늘의 형상을 닮은 조각을 지나쳐 바람에 일렁이는 대나무 숲 너머 파도를 한참 가만히 바라보다, 이윽고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조약돌 깔린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한때 어둠을 밝혔을 석등을 스쳐 지나간다. 숲 사이로 돌에 노끈을 감은 작은 오브제 조각이 흩뿌려져 있다.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에 대해 곱씹으며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오렌지 로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5억 년 전 화석부터 다양한 시대에 걸친 화석과 농부의 도구, 청동기 유물, 설형문자를 새긴 점토판이 전시된 화석 동굴에서 무인 판매하는 감귤이 이 땅에서 자란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하늘과 바다, 녹음이 우거져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에노우라 측후소는 고대의 시간 인식을 되살리려는 실험이기도 하다. “이곳의 시간 척도는 고대의 심리적 감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스기모토는 설명한다. 건축물은 마치 5천 년 전 또는 1만 년 전에서 온 것처럼 설계했으며, 동시에 5천 년 후에도 남아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구상했다. 유리창이 깨지고 지붕은 무너져도, 100m에 이르는 벽은 남아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이 무엇이었는지 상상하게 하리라”라며, “그때쯤 벽돌은 닳고, 진흙에 젖어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머무는가?’
자연과 시간, 개념과 기술, 철학과 예술, 과거와 미래를 유기적으로 잇는 스기모토의 예술관은 에노우라 측후소 곳곳에 배어 있다. 그는 이곳을 과학적 기능을 보유한 관측소나 예술을 보여주는 장소보다는 ‘경험’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세상의 흐름을 읽는 작업이 마음을 끌어, 기상관측소를 동경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다듬어 자신만의 예술적 방식으로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그는 자신이 어떤 순환 속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사라지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삶의 에너지가 잠시 보관되는 어떤 장소로 돌아간다고 느낀다.” 에노우라 측후소는 그런 근원으로의 귀환을 준비하는, 시간과 자연, 생과 죽음을 껴안는 하나의 조용한 ‘관측소’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언제부터 ‘의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되묻는 심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머무는가?’가 더 중요하다. 느릿느릿 걷고, 앉고, 쉬어 가며 바람과 빛, 파도 소리 속에 몸을 담그는 시간은 관람보다 체류에 가깝다. 스스로 감각을 열어두게 해 파도 소리, 풀잎의 흔들림, 발밑의 자갈 소리 같은 사소한 요소가 오히려 주변의 풍경을 더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아주 평범하지만, 기억 속에 또렷이 남는다. 시공간을 초월한 관측은 감각과 기억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에노우라 측후소는 자연을 분석하지 않고, 함께 머무는 방식을 제안한다. 기능보다는 경험을, 설명보다는 체감을, 하늘을 예측하거나 해석하는 일보다는 머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특정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자각과 시선이다.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역으로 향하는 셔틀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고 서둘러 나설 무렵, 남은 것은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있던 시간 그 자체다. 바람의 결, 구름의 흐름, 바다의 잔잔함이 언어를 통한 설명 없이도 선명히 새겨진다. 하늘과 땅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기억 속에 남는 관측 경험을 선사하는 에노우라 측후소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천문대일지도 모른다.
Artnow Issue 50 (Summer 2025) CITY NOW ODAWARA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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