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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외계인 Feb 27. 2022

디자이너의 영역, 예술가의 영역 feat.개똥철학

* 먼저 서두에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이곳은 나의 지극히 사적인 생각을 담는 공간이고- 나의 의견이나 이야기가 일반화가 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저, 또 하나의 의견, 또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라는 관점으로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하루의 8시간은 회사에서 필요한 브랜딩, 비주얼 콘텐츠나 브랜드 디자인을 하고, 그 외에는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한다. 누군가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디자이너라 답할 것이고,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하고 사느냐라고 묻는다면 예술을 한다고 답할 것이다.


팩트를 말하자면 나는 디자인과 순수 미술 모두를 전공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고, 그 두 가지를 하는 나의 두 개의 - 디자이너와 예술가-라는 자아들을 공평하게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장르의 전문가라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이라는 한 우물만 열심히 파는 열혈 디자이너들도 많고, 순수 미술이라는 분야에 평생을 예술혼을 바치는 예술가분들에 비하면 나는 그 중간 어디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어떻게 보면 '아웃 사이더'일 지도 모르겠다.


(c) Freepik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순수성

디자인을 전공해서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다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나 질문은 유명한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 현대 디자인의 흐름, 나도 처음 듣는 디자인 관련 용어나 해외의 유명한 디자인 스쿨들...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순수성을 따지고자 하는 이가 너무나 많다. 유명한 디자인 스쿨이나 디자인 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순수성.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디자인으로 '예술'을 하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순수성. 


하지만 디자인 학위 따위 없어도 디자인만 잘하는 디자이너들이 넘쳐나고, 유명 디자인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디자인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너무나 많다. 내 친구 A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위 2년제 대학의 디자인과 관련 없는 과를 전공했다. 하지만 졸업 후 본인의 노력으로 커리어를 잘 닦아 나가, 지금은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현역 디자이너이자 프리랜서 프로젝트로 본인의 창의성에 대한 갈증을 채우는 성공적인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에 반해 또 다른 친구 B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 디자인대학을 졸업했다. 초반에 전공을 살려 몇 년 디자이너로 근무했지만, 결국 같은 비즈니스 분야의 다른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이 친구 B 역시 누구보다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과연 디자인을 전공하고 전공하지 않고 가 그렇게 중요할까?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것은 그들이 디자인에 대해 연습하고 연구했다는 것의 증빙이지 그들의 디자인 실력을 대변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디자인에는 학위가 절대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바이다. 


디자인이라는 영역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유명한 디자이너들 혹은 프리랜서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분들은 대부분 그들만의 색을 가지고 누가 봐도 그 사람이 디자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작업들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본인들의 디자인 작업들로 전시도 하고, 전시만을 위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디자인을 하는 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디자인만이 순수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 상업디자인보다는 소위 '한 수 위'라는 시선을 가지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따져 묻는 비딱한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디자인의 본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분야가 아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느끼는 pain points를 찾아 needs에 맞게 '목적'을 가지고 고안을 하는 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다. 예전 석사 학기 중 디자인론이라는 수업을 들을 적이 있다. 퇴직을 하셨지만 명예교수로써 디자인론 강의를 하고 계시는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 말이 나는 디자인의 본을 너무나 명확하게 정의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사람과 사물(thing)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무언가' 사이의 갈등, 불편함- 그것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디자인이 아닐까 한다. 시각적 요소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예쁘고 멋지게 작업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목적에 맞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 기능을 가장 잘 뽐낼 수 있는 시각적인 요소들을 뽑아내 디자인을 해야 한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종종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멋진 '의자'를 보게 된다. 의자는 너무나 아름다운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이 의자를 나의 거실에 놓는다면 인테리어는 한층 더 살아나고 빛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이 의자를 사용하면서 발생한다. 의자의 본래 목적은 '앉는 것'이다. 의자 디자인의 본래 목적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편하게 (가능하면 오랜 시간을) 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본 목적을 지키면서도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의자가 있다면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테리어를 위해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만든 의자'가 사용자에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까?


각 디자이너들마다 저마다의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 다만, 기업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디자인'이란 시각적 예술이 아닌 내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목적'에 필요한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어 브랜드와 기업의 이미지에 도움을 주는 '목적을 만족' 시켜주는 매개체이다. 





예술가라는 직업의 순수성

디자인을 전공하고, 콘텐츠 기획자로 일을 했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이제 막 발돋움을 하려 했던 내가 갑자기 순수 미술을 공부한 것은 그저 그 분야에 관심이 갔고, 공부를 하며 개인 작업을 해보 싶다는 정말 심플한 욕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예술의 판도를 바꾸겠다 혹은 예술에 내 평생의 혼을 바치겠다는 거창한 목적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 절대 아니다. 예술이라는 분야를 공부하고, 더 이해하고 싶었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영국에서 석사를 하는 동안 사진, 설치, 페인팅 등 내가 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는 다양한 매체를 탐구했다.


어찌 보면 나는 '사짜' 예술가 일지도 모르겠다. 순수 미술작가로 크고 작은 전시를 했지만, 한 번도 스스로가 '온전한 풀타임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적은 없다. '정체성'에 대한 주제로 작업을 하는 나에게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들을 통해 공감을 얻고, 다른 이들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위안이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 작품을 선보이는 곳이 그저 길거리라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 만족한다.


문제는 누군가에게 '아, 저는 제 작업도 하지만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라고 말을 하면 순간 조금은 싸늘하게 바뀌는 시선을 종종 느끼곤 한다는 것이다. 예술 외의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 '순수성'에 대해 조금은 의구심을 갖는 표정을 비추는 분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물론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Again,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 그랬다.)


예술가들은 땅을 파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현 시대의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본 대부분의 예술가분들은 너무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계신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이것도 엄연히 말하면 교수나 강사이지 예술가로써 하는 일을 아니지만, 왠지 미대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면 그 순수성을 조금 더 부여받는 것 같기도 하다), 디자인 부업을 하시는 분들, 식당이나 카페에서 파트타임을 하시는 분들고 있고, 전시 설치를 도와주는 일을 하거나 가이드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그들의 본업은 '예술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예술가분들은 본인이 먹고살고-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을 그리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전에 일한 회사 디자인팀의 이탈리안 팀장 역시 본인의 작업을 하는 작가- 이자 우리 회사의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그 친구 역시 본인의 주변 사람들, 특히 예술 쪽에서 만난 지인들은 본인이 디자이너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대부분 모른다는 것이다. 비밀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는 말투였다. 꽤나 충격이었다. 지금은 21세기이고, 심지어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받는다는 베를린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 문제는 또한 예술 작업이 필요한 재료들을 사는 데에도 기여한다. 나는 21세기형 예술가는 -예술가로써 스스로 경제적 자립이 어렵다면- 제대로 된 경제적인 능력을 확립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스로가 부유하거나, 재단의 후원, 작품 판매만으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특히 상대적으로 작품 판매가 어려운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분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는 박진영이라는 가수의 빅 팬은 아니지만, 그가 회사 연습생들에게 한 조언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는 연습생들에게 대학을 가라고 독려했다. 가수-예술가라는 직업은 불안정하다. 성공에 대한 보장도 없고, 누가 언제 어떻게 소위 '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아직 어린 연습생들에게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가수-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미래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소위 '현실적인 백업'이 필요한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졸업장으로 추후에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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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제 30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거창하게 디자인과 예술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 '개똥철학'이라고 적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저 '나'라는 사람은 살아오며,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분야를 지나오며- 이러한 경험을 했고, 이러한 부분이 답답했고, 앞으로 이러한 방향도 우리는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양성이 인정받고, 더욱 인정받아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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