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그놈을 만나러 출발 20230810
베를린에서 다닌 첫 직장 동료들과는 꽤 가깝게 지냈다. 함께 회사를 다닐 때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일을 마치고 함께 어울렸고, 꽤 많은 여행들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동료보다는 친구에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지금은 대부분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종종 만나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
코로나 이후로 가까운 당일치기는 함께한 적이 많지만, 매번 어디 여행 가자가 자 말만 하고 실천을 못하고 있던 그때- 꽤 재미있는 여행 계획이 찾아왔다.
꽤 인터내셔널 한 우리 그룹은 나라도 나이도 다 제각각. 그중 스페인 출신의 친구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코로나가 터질 때쯤 베를린을 떠났다. 그 후 몇 번의 나라와 도시를 옮긴 끝에 최근 네덜란드로 이직을 하며 그곳으로 이사한 지 이제 서너 달. 이제 네덜란드에서 자리를 조금은 잡은 친구가 베를린에 오랜만에 놀러 오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 친구가 베를린에서 머무른 4일 중 3일을 함께 보내며 오랜만에 다 같이 대 환장의 시간을 보낸 우리. 문득 오랜만에 다 같이 여행도 할 겸 네덜란드로 놀러 오라는 말이 다 같이 솔깃하여 그렇게 우리의 대장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 친구가 사는 곳은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브레다. 사실 나는 이 친구 덕에 브레다라는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네덜란드라고는 암스테르담에서 머무른 며칠이 다 인지라, 네덜란드는 그저 나에게 반 고흐 미술관이 있고 튤립이 유명한 나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이놈을 애증의 관계라 칭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성격이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정반대의 성향이 강한 우리는 농담치고 놀 때에도 죽이 잘 맞지만, 한번 언쟁이 붙어 싸우기 시작하면 또 살벌하게 싸우고, 그러다가 다시 쿨하게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정말 알 수 없는 관계다. 마음 깊은 곳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 안 맞음을 인정하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사이랄까. ㅎㅎ
무튼 일정이 안 맞아 여행에 멤버 전부 합류하지는 못했고, 나와 친구 두 명이 브레다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나 말고 함께 여행하는 나머지 두 친구는 아직도 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공항으로 가야 하기에 먼저 일을 마친 내가 그들 사무실과 가까운 중앙역으로 가기로 했다.
일하는 시간이 꽤나 유연적인 나는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휴가 모드. 친구 둘은 아직 업무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하다고 해서 중앙역 근처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
날씨가 너무 좋아서 햇볕에 광합성 쫙쫙 받으며 친구들을 기다리는 여유로운 시간. 앞으로의 4일은 이 친구들과 정신없이 흘러갈 테니- 마지막 여유를 마음껏 만끽해 본다.
이윽고 친구들이 합류하고, 우리는 베를린 공항으로 향했다.
베를린에서 브레다까지는 직항이 없어서, 우리의 루트는 베를린-암스테르담 비행, 그리고 암스테르담-브레다 기차 여행. 업무를 마치고 출발한 덕에 브레다에는 거의 밤 10시가 넘어야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 후는 기다림의 연속. 공항 가서 기다리고, 비행기 기다리고, 이륙 기다리고, 기차 기다리고-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드디어 도착한 브레다 역.
브레다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하다. 아무리 여름 해가 긴 유럽이라지만, 밤에 도착하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기차역에 우리를 마중 나와 준 친구와 찐-한 단체 포옹을 마치고! 본격적인 브레다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인지라 본격적인 여행은 불가능했고, 회포도 풀 겸 바에서 한잔하기로. 기차역에서 바까지는 거리가 좀 있기에 바까지 걸어가며 짧은 브레다 야간 투어를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이렇게 유럽의 밤거리를 거닐고 있자면, 종종 왜 유럽의 그 많은 화가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페인팅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 아름다운 밤 풍경-
포토 그래퍼인 애증의 그놈이 지난 촬영 때 와본 적이 있는 바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씨푸드 클럽이라고 쓰여있길래 좋아했더니만, 시간이 너무 늦어 키친을 이미 닫았단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칵테일이나 한 잔씩 하기로. 촬영 장소로 헌팅 될 만큼 꽤나 독특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가진 장소였다.
날씨가 아직은 너무 좋은 여름이라 바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받았는데, 메뉴 디자인이 꽤 특이하다. 각 지역에 따라 칵테일 이름도 다르고, 그에 맞는 간단한 설명도 함께 했다.
주문한 칵테일들이 나오고- 내가 선택한 음료는 아기자기한 안개꽃이 담겨있는 논알콜.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못 나누었던 근황 토크가 이어지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내가 왜 이놈을 애증의 그놈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ㅎㅎ
액션이 꽤 큰 이놈은 한창 신나서 말하다가 내 칵테일 잔을 날려먹었다 ㅎㅎ 역시 전방 2미터 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능력을 지닌 놈 하하하하. 그래도 자기가 내 칵테일 망쳤다고 새로운 칵테일을 주문해 준 놈. 미운 짓 한 번, 이쁜 짓 한번 하는 미워할 수 없는 친구 놈이다.
배가 너무 고팠던 우리는 늦게까지 여는 곳은 역시 케밥집밖에 없다며 피자와 케밥 등을 파는 곳으로 향했고, 간단하게 테이크 아웃을 해서 그놈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따로 렌트했지만, 그곳은 게스트 외에 다른 사람은 갈 수가 없도록 제한하고 있고 그놈 집으로. 다른 플랏메이트 한 명과 살고 있다는 그놈의 집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바비큐를 할 수 있는 뒤뜰이 있는 무려 2층 집. 덕분에 우리는 2층의 플랏메이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1층을 점령하여 놀 수 있었다.
케밥과 피자, 그리고 맥주가 뒤섞인 2차. 음악도 듣고,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새벽 2시를 넘어서야 그놈의 집에서 나설 수 있었다.
별거 없지만, 별거 많았던 우리의 브레다 첫날.
내일부터는 거의 1일 1도시 여행 계획을 스펙터클하게 짠 놈들 덕에 여행 내내 에너지 탈탈 털릴 예정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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