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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스어스 May 12. 2023

얼스어스의 #번거로운포장법

“용기내“, ”다회용기“ 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다.

손님들로 인해 #번거로운 포장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왼:작고 소중한 얼스퀘이크/오:우린 어떡해서든 담는다. 그 어떤 그릇이 와도 담아드린다.


최근 어버이날에 판매했던 생화케이크. 개인적으로 작년보다 더 디벨롭된 직원들의 스킬로 예술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그릇은 모두 손님들이 집에서 가져온 것.아름다워요.
이제 너무 많아서 모으지 않지만, 언젠가 이 특별한 카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낼 수 있다면 꼭 자료로 쓰고 싶어서 모아둔 #번거로운포장법 사진들

당시에는 포장법의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 포장을 해가셨던 분께서 인스타그램에 후기도 올려주시고 다른 분이 그 후기를 ‘발견’하고 또 와서 포장해 가시고, 그럼 그분이 또 블로그에 올려주시고 그걸 다른 분이 찾아서 또 와서 포장을 해주셨다. 정말 알음알음 손님들이 소문을 내주셨고, 네이버에 <얼스어스>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얼스어스포장>이 늘 따라붙곤 했다.


나는 얼스어스 손님들께 정말 정말 감사하다. 가게를 열고 2년이 넘도록 케이크 사이즈 한 번 공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릇을 가져오면 포장을 할 수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판매를 부추기는 것 자체가 친환경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되게 심하게 했었다.(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생각인가, 사업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 첫 번째 목적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렇게 단골손님들도 많고 오래도록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


여하튼 그래서 크기가 맞지 않는 그릇을 가져오시는 분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분이 있다. 운영 초반에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냐는 물음에 늘 거론되던 분이신데 ㅎㅎㅎ 어마무시한 크기의 웍을 가져오신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보기 힘든 디자인이었던, 조각케이크 모양이 아닌 홀케이크 같은 모양의 동그란 얼스퀘이크가 큰 사이즈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너무 웃픈 상황! 그때는 나도 낯을 가릴 때라 손님께 너스레를 떨지 못해 그게 참 아쉽다. (여전히 손님으로 방문하신다면 꼭 아는 척 좀 해주세요 ㅎㅎㅎ)


가게에서 일하는 우리에게도 우리의 포장 방법과 포장 손님들은 이슈가 되었고 우리끼리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플라스틱용기는 가벼운데 플라스틱이라 좀 그렇고… 유리용기는 무겁지, 너무?

/그니까, 근데 용기 뭔가 귀엽다. 여러분, 용기 들고 용기 내서 오세요! 뭔가 귀엽지 않아?

/헐! 너무 귀여워! 너무 좋다!


언어유희를 심각하게 좋아하는 (다들 아시죠?ㅎㅎㅎ범상찮은 케이크 이름들부터…) 나로서는 용기 들고 용기 내서 오라는 말이 너무 심장이 아팠다.

실제로 그 당시, 가게에 포장을 하러 오시는 분들 99.9%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가게를 들어선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쥬?><) 그러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하관운동이라도 하는 듯 어렵게 떼어내며


/호옥… 시….. 포…..ㅈ..ㅏ…ㅇ….


이라고 운을 떼시면 우리가 잽싸게


/용기 들고 오셨어요?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보통 후기에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해보니 별 거 아니었어요! 하는 말이 많았다. 실제 상황과도 너무 딱 떨어지는 그 말장난이 어찌나 재밌던지, 피드에 종종 용기내라는 말을 적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린피스에서 *용기내*라는 캠페인을 하는게 아닌가! 뚜둔-!



또 어느 날엔 그런 생각을 했다. 일회용기에 포장이 안된다고 하면 그럼 뭘 가져와야 하냐고 묻는다.

/아하, 집에서 사용하시는 반찬통이나 냄비 도마 쟁반 등 씻어서 쓸 수 있는 거면 모두 가능해요!


이런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며, 너무 길지 않나? 좀 더 간단명료한 말은 없을까 생각해 봤다.


일회용기의 반대말은 뭐가 있을까? 한 번 써서 일회용이니까, 여러 번 쓰면 다회용이 아닐까?

그때부터 우리는 다회용기에 대해서 설명하고 “다회용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혹여 내 기억이 왜곡된 걸까 봐 이걸 한 번 찾아본 적이 있는데 다회용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이미 등록되어 있는 말이긴 했으나 실제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아니었다. 네이버에 2016년 필터로 다회용을 검색해 봤는데 거의 쓰이지 않고 있었다. 반박 시 님말이 다 다 다 맞아용.


가끔 우리가 한 일들이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어렵게 끙끙대며 일구어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용기내 “라는 말이나 ”다회용기“라는 말이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는 걸 보면 가끔 너무 신기하고 가슴이 막 콩닥콩닥거리기도 한다. 마치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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