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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스어스 May 10. 2023

그렇게 무포장 카페 사장이 되다.

제로웨이스트나 노플라스틱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 무포장 카페를 열다.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으니 어디에 오픈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 영등포에 살고 있던 나는 친구들을 주로 홍대나 연남동에서 만났다. 하지만 작고 좁은 골목, 지하부터 3층 연립주택을 개조한 상가들이 층층마다 뺵빽하게 들어선 가게들은 왜인지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정처 없이 친구과 걷다 걷다 연남동 아주 후미진 거리까지 걷게 되었는데, 메인 도로와는 달리 고요한 2차선 도로에 상가라고는 30년 넘게 운영했다는 서민마트 하나. (작년에 없어짐ㅜㅜ) 그 주변에 아주 예쁜 2층짜리 단독 주택이 리모델링 중이었다. 그곳에 <임대>라는 현수막을 보고 그 자리에서 당장 전화를 해보았다.

지금 보아도 정말 예쁜 집. 오히려 지금보다 더 예쁘다. 이 모습에 반해 바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월세의 공간은 예쁜 집의 측면에 있는 원래 주택의 차고지였던 곳. 이곳은 얼스어스가 있기 전 연남동에 아주 오랜 고물상이 있던 곳이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로 월세가 이전보다 훨씬 많이 오르며 쫒기듯 나가게 되셨다고 들었다. 간혹 고물상 사장님을 찾는 분들이 오픈 직후 종종 계셨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건물주께서 나와의 계약을 미루다 두 달을 기다려 계약을 하게 되었고(지금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 여ㄸr…) 2017년 11월 10일 얼스어스를 오픈하고 나는 그렇게 무포장 가게 사장이 되었다.

공사중이던 얼스어스 연남점. 이때 나는 얼마나 부풀었는지 모른다. 당시 나는 공사를 진행중일 때는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백화점에서 단기 알바를 했다.


점점 진행이 되어가는 모습. 계약날부터 오픈 전까지 잠도 못자고 많이 많이 무섭기도 했다.
오픈 직직직직직직직전의 모습


가게를 하려고 마음먹고 나서는 다년간의 알바 경험으로 인해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음료 메뉴를 만들고 원두 업체를 선정하고,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케이크 하나와 구움 과자 하나는 납품받을 생각이었다. 내가 일하던 곳 중 한 군데에서 아주 맛있는 케이크를 납품받아 팔았었는데 나도 그 케이크를 맛있게 먹었었다. 또 그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휘낭시에도 너무 맛있어서 그렇게 두 개를 받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의를 하던 중, 최소납품개수가 케이크의 경우 홀케이크 10판부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보통은 냉동보관하다가 하루 판매할 분량만큼만 냉장보관해서 판매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럼 작은 가게와 맞지 않게 너무 큰 냉장고가 필요했고 거기에 딸려올 케이크 박스나 보냉재 등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다.


지구에 부담을 덜 주는 가게를 하고 싶어 시작한 가게인데 규모보다 큰 냉장고가 필요하고 케이크 개수만큼 쓰레기가 딸려 올 걸 생각하니 차마 납품을 받을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나는 가게에서 단 10개가 나가더라도 소박하게나마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맛있게 먹었던 케이크들 중에서, 뭐가 부족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유튜브로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뻬고 난 케이크를 한 번 도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카스텔라 같은 빵 같은 케이크를 싫었다. 아주 꾸덕한 치즈케이크를 좋아했는데(애슐리나 필라델피아 같은 치즈케이크) 그마저도 먹을 때마다 좀 덜 빵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의 크림치즈케이크(얼스퀘이크 종류들 중 하나, 초창기에는 크치 딱 한 종류 밖에 없었다./얼스어스의 케이크, earthquake!)가 만들어졌다.

테스트는 정말 4번 밖에 하지 않은 듯 하다.  케이크들를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선보였는데 네번째 케이크는 순식간에 사라지기에 맛이 나쁘지 않나보다!하고 생각하고 메뉴로 결정.

얼스어스 오픈 첫날, 나는 10개의 얼스퀘이크를 만들었다. 그중 3개가 나갔고 가오픈기간 동안 일을 도와준 친구가 아침저녁으로 2개씩 먹어치웠다 ㅋㅋㅋㅋ(여담이지만, 나도 오픈하고 몇 년 동안은 이걸 팔아 먹어 하면서 매일같이 고민했던 추억...) 취향을 저격했나 보다 하고 말았는데 그 이후로도 손님들은 하나뿐인 디저트를 심심치 않게 주문해 주셨고 급기야 집에 포장을 해가겠다는 손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요청하시는 모든 분들께 정중하게 사양하며, 환경을 생각해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포장이 어렵다고 설명해 드렸는데, 어느 날엔 그럼 집이 이 근처이니 그릇을 가져오면 해줄 수 있냐, 고 여쭈어보기에 가능하다 고 말씀드렸다.


그 손님들로 인해 #번거로운포장법 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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