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에는 auffällig이라는 단어가 있다. 무언가 눈에 띄고 두드러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첫 학기, 첫 강의실에 들어서며 나의 존재가 auffällig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유학을 시작한 도시는 60만 인구의 중소 도시였다. 한국과 비교하면 안산시 정도의 인구다. 독일에서는 작은 도시는 아니다. 내가 늘 이 도시를 가리켜 "작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다른 독일 친구들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도시 출신이었다. 이곳에도 큰 종합대학이 있고 이 종합대학엔 외국인 학생들도 많이 있었지만 내가 입학한 미술교육과는 학생들 수도 적고 미술교육과 건물에서만 모든 수업이 진행되는 작은 규모였다.
나의 첫 번째 잘못된 선택은 석사과정이 아닌 학사과정으로 입학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독일어 실력이 부족한데 석사과정을 시작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학사과정을 하며 독일어에 익숙해지자는 심산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한국에서의 학부 전공은 회화로, 교직과정을 하긴 했지만 독일 미술교육과 학사과정에서 뭔가 더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 기대가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일 대학 수업은 크게 세 카테고리로 나눠지는데 세미나 Seminar , 포어레중 Vorlesung , 위붕 Übung이다.
한국 대학 강의와 가장 가까운 것은 포어레중이다. 독일어로는 앞에서 읽는다는 뜻이다.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각을 했다. 5분쯤 늦게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대형강의실의 문이 하필 앞쪽에 위치해 있어서 내가 들어갈 때 모두가 나를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이때 나 혼자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고 나는 그들을 기억 못 해도 그들은 나를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약 300명쯤 되는 모든 학생 중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고 가장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의 조상을 따져보자면 매우 복잡하고 유럽연합 출신의 이주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많다.
나의 존재가 이렇게까지 눈에 띌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이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기묘하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뿐 아니라 트램을 탈 때, 어딘가를 갈 때 지속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수시로 인식하게 됐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껄끄러움이라는 것은 이렇듯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로 말할 수 없는 촘촘하고 작고 아주아주 사소한 감정과 시선들이 삶 속에 퍼져있었다.
인구 75만의 지금의 도시로 이사오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것은 익명성이었다. 서유럽의 교통 허브역할을 하는 프랑크푸르트는 수도권처럼 프랑크푸르트시를 에워싸고 있는 위성도시들이 발달해 있어서 사실상 규모가 꽤 크다. 바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이 도시에서 정말 오랜만에 아늑한 편안함을 느꼈다.
사실 나는 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던 청소년이었다. 피어싱과 염색을 일삼았다. 그런 내가 군중속에 포옥 파묻혀 편안함을 느끼는 날이 오다니, 세상 참 살고 볼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