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집을 짓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일이라고 누군가 말해줬더라면.
어쩌면 이 시리즈의 제목은 "누가 말해 줬더라면"이라고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 질문이 의미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사실들을 일러준 사람이 없었거니와 있었더라도 내가 겪어보기 전에 듣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누군가 말을 했지만 귀 뒤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학 4년 차,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함부로 언어의 집을 짓지 마라"
외국어 능력이 흔하다 못해 내세울 만큼 잘하려면 원어민 만큼 해야 하는 게 현실인데 세상 물정 모르는 말 같기도 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다른 언어로 말하고 사고한다는 것은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기도 할테다.
나는 언어 배우기가 벽돌로 집 만들기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 처음엔 문법이라는 주춧돌을 세운 뒤 어휘라는 벽돌을 쌓아간다. 이 벽돌을 쌓는 것이 아주 지난한 과정이다. 벽이 얼추 바람이라도 막아줄 만큼 반듯이 서기 위해서는 어쨌든 수많은 벽돌이 쌓이고 이어져야 한다. 내가 지은 독일어의 집은 아직도 엉성하고, 벽돌은 거의 한쪽 벽에만 집중돼있어서 다른 쪽 벽은 벽답게 바로 서지도 못할 지경이지만, 벽돌들 사이에 틈도 많아 때에 따라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기도 하지만 그래도 얼추 집 같은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는 중이다.
이 볼품없는 집에도 나의 정신이 깃들기 시작해서 벌써 나는 서러워진다.
유학 3년 차가 넘어갈 때쯤 스스로 반쪽짜리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독일에서의 나는 완전한 일원이 아니다. 이곳엔 나의 과거를 말하고 공유하고 미래까지 함께 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모로 보나 정신으로 보나 철저한 타자인 나는 사회 속에 완전히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샌가 부지불식간에 독일이라는 나라에 내 마음의 둥지를 틀어버리게 돼버린 것이다.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 아무 호수나 뛰어들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자유, 사람들의 표정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 심지어 어둡고 축축한 독일의 겨울까지도. 이곳에서 완전하지 않은 나는 한편 한국에 가더라도 다시는 완전해질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마음의 한 조각을 남겨둘 수 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평생 어느 한쪽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서러워졌다. 너무 많은 고향이 있는 사람은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언어에도 동시에 가질 수 없는 이 두 개의 그리움이 상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어로 말할 때 내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독일어들이 있다. 펄럭이며 순간 머리를 뒤덮은 이 단어, 표현들은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가장 적확한 표현이지만 한국어로 다시 곱게 접어 말한다. 이전에는 없던 시간적 지체가 생겼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니, 독일어로 말해야 할 때 한국어가 생각나 한국식 표현이 아닌 독일어를 고르는 일은 당연히 더 허다하지만 말이다.
대화가 가장 편한 사람은 나만큼 독일어를 하고 나만큼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다. 어느 한쪽만을 하는 사람하고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한켠이 생겨버렸다는 것에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언어의 집을 짓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것인지 알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집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어쩌면 아주 쓸쓸해질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