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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오 Jun 13. 2019

일상이 허들이 되어 세워진 곳

핸드폰을 도둑맞아 비로소 쓰여진 여행의 짧은 기록들 2



표정


유럽여행의 어리둥절을 압축하는 4컷의 사진


 정말이지 전혀 준비 없이 간 여행이다 보니 공항에서 어떻게 기차역에 가야할지, 환율 개념, 교통체계, 중요한 고유 명사등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전날 급히 산 『이지유럽』 (그나마 4개국 가이드북이라 런던은 없었다) 을 한권 챙기고. 비행기도 많이 못타본 나, 얼레벌레 줄 따라다니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시기상으로는 종강 2주 후에 출국이었지만 교생 이후 엄청나게 산적한 레포트, 시험, 심지어 과제의 늪에서 쩔쩔매다 다 끝내고 나니 이틀 뒤에 출국이었던 것이다. 이 후에 나의 여행은 1,2,3,4 표정으로 집약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낡은 사진기계를 종종 볼 수 있다. 유럽 영화에서도 가끔 등장 하는 것 같다. 독일에는 연속적으로 4컷의 사진이 나오는 흑백사진 부스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꼭 찍어보고 싶었던 터라 여기저기 들어가 봤지만 다들 낡은 탓에 제대로 된 기계가 없어 동전도 먹고, (한국인답게 기계를 절박하게 쳤더니 먹은 것의 두 배의 돈인 4유로가 뱉어져서 의외의 횡재가 되었지만) 막상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미술관 앞에서 제대로 된 기계를 만나 돈을 넣었다.


 기계에는 크게 2유로 (한국돈 3000원 정도), 그리고 4라는 글자와 함께 독일어가 씌어 있었다. 일단 2유로 동전을 넣고 나니 숫자 4가 대문짝만하게 눈에 보였다. 난 순간 4유로였나? 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2유로를 더 넣기 위해 가방을 뒤적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불빛이 번쩍 하는 것이 아닌가? 플래쉬 였다. (1번 컷) 플래쉬에 놀란 나 (2번 컷) 잠시 생각을 해보니, 4는 4컷이라는 말이고 이건 원래 2유로짜리였다. 1유로는 두 개를 넣어야 했기 때문에, 2유로 두 개를 넣어야 한다고 숫자 4때문에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상황을 이해한 (3번 컷) 그리고 나니 이미 여러 컷이 망했고 이제라도 뭔가 표정을 지어보자라며 웃어 보인 게 (4번 컷)이다.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 하다 인화된 사진을 받아보니 그렇게 웃길 수 가 없었다. 이 네 컷의 표정이 이 여행, 아니 내 인생의 축소판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2번 표정, 어쩌면 난 매번 그런 표정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입국심사대에서 간단할거라고 생각했던 것 과 달리 엄청난 질문 끝에 1달 여행비를 인출기에서 뽑아와서 보여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때 난 심지어 여행비로 30유로가 있다고 했다. 30유로면 4만원이 좀 안 되는 돈인데), 이탈리아에서 바티칸에 급히 가야하는데 지갑을 두고 나왔을 때, 미로 같은 베네치아에 도착한 첫날 호기롭게 섬 입구까지 갔다가 밤 늦게 숙소로 돌아가는데 길을 잃어서 골목 끝에 바닷물만 계속 나왔을 때, 카프리에서 배를 타야하는데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물을 사왔더니 이미 배가 출발해서 excuse me를 목 놓아 외칠 때, 배를 다시 대어준 선장 아저씨가 웃으며 1유로 더 내라는 농담을 던졌는데 한국말로도 그런 농담에 대처를 못하는 나를 다시금 재인식 했을 때, 야간열차에서 옆자리 나이지리아 동생이 (키는 2미터쯤 되어 보이는데 나이는 26살) 자꾸 내 손바닥이 좋다면서 손바닥을 만지려고 했을 때!

 런던에서 숙소가 중복예약 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지막 프랑크푸르트에서 밤늦게 숙소를 찾아갔더니 내 예약이 캔슬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뮌헨에서 기차를 타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22시 기차를 11시라고 생각하고 이미 보내버렸을 때. 등 수도 없이 많다.


 그러고 보면 여행 중반이 넘어가면서 부터는 자연스러워졌지만 처음엔 마트 계산대에만 서도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한국에 있을 땐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인식조자 하지 못하는 밥 먹기, 버스 타기, 잠자기, 이동하기, 물 사기, 화장실 가기와 같은 생활들이 모두 커다란 장벽이 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정말 여러 번씩 이와 같은 난관들을 마주한다는 것이 정말 낯설었다.

 몸이 아파야 비로소 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낯선 곳에 간다는 것, 여행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익 숙해서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모든 행위들이 다 장애물이 되어 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촘촘한 허들이 앞에 놓이는 것이었다.




* 일련의 여행기는 2015년 여름 40일간의 여행 후 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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